TV드라마의 단골메뉴인 "사랑".

8일 오후 9시45분 첫 전파를 타게 될 SBSTV의 새 수목드라마 "달팽이"도
사랑을 주제로 다뤘다.

하지만 자극적 묘사나 선정적 화면이 없는 것은 물론 심각하지도 않다.

가을날의 동화 한편을 감상하는 듯한 깔끔한 느낌을 주는 드라마다.

옴니버스형식의 독특한 구성으로 이정재 이미숙 이경영 전도연이 순수한
영혼의 정신지체아와 플라토닉 러브를 꿈꾸는 30대주부, 바람난 남편,
신분상승을 갈망하는 현대직장여성 등 네 남녀의 4가지색 사랑을 그린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스타들이 대거 등장, 스타시스템에
의존하는데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

"옥이이모"를 연출한 성준기PD와 "모래시계"의 작가 송지나씨 모두
이름값에 맞는 역할을 잘 해내는 듯 보인다.

4명의 주인공은 각4회 분량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되고 화자가 되지만
극 전체로는 통일된 흐름의 이야기가 유기적인 연결고리에 의해 이어진다.

결국 같은 내용에 대해 다른 시각을 볼수 있는 셈.

첫번째 이야기인 "아내의 남자".

초등학교 5학년때 부모가 교통사고로 죽는 모습을 목격한후 지능발달이
멈춰버린 정신지체아 동철 (이정재)의 정윤주 (이미숙)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드라마의 도입부인 만큼 이정재라는 스타 개인의 연기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는 듯하다.

극적 긴장감이나 갈등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잔잔한 감동과 웃음만으로도
보는 재미를 제공한다.

등장인물의 정제된 대사, 세심한 심리묘사와 무심한 카메라워킹은 특히
돋보이는 부분.

애써 사랑을 얘기하려 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동철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카메라의 시선은 무덤덤한 주변에
머문다.

대사도 심각한 내용에 관계없이 마치 남얘기를 하는 것처럼 이뤄진다.

당사자는 심각하지만 다른사람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은 실제모습의
반영이다.

영화처럼 보이도록 구성한 화면은 배경음악과 조화를 이뤄 깔끔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여기에 다른 등장인물 또한 제몫을 담당하며 균형잡힌 틀을 제공한다.

이정재가 홀로 바라보는 시선의 단조로움을 탈피하기 위해 성만
(이두일), 태주 (손현주) 등 조연들의 이야기가 삽입돼 지루함을 없애고
극에 생동감을 준다.

대사 하나에도 신경쓴 흔적이 엿보인다.

심각한 내용에 덧붙인 위트있는 대사와 중간중간의 웃음을 머금게 하는
장면 등은 또다른 볼거리다.

그러나 갈등구조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은 극의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모든 출연자들이 그저 선하게 그려진데다 극의 흐름도 잔잔해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수 있다.

무게중심을 잃지 않으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 이 드라마의
숙제다.

< 양준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