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했던 일이지만 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사가
신한 한일 외환 등 국내 시중은행의 신용평가등급을 한단계씩 낮춘 것은
뼈아픈 일이다.

당장 해당 은행들이 해외에서 장기채권을 발행하거나 자금을 빌릴 때
차입금리가 올라가는 등 경제적인 손해를 입게 됐으며 한국금융업 전체의
대외신용 추락도 피할수 없게 됐다.

사정이 이렇게 악화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기아사태가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배경은 국내 은행의 전근대적인 영업행태
탓이라고 할수 있다.

비록 국내 은행들은 3대 완성차업체의 하나인 기아그룹을 못믿고 어떻게
영업을 하겠느냐며 항변하지만 누가 봐도 취약한 재무구조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사업확장에 거액의 대출을 해준 것은 무책임한 일이었다.

현대 금융의 본질은 위험을 떠안는 것(risk-taking)이라고 한다.

위험을 떠안으려면 고객에 대해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 관치금융에 길들여지고 담보대출에 익숙해진 국내
은행들은 위험분석 기능이 너무나 취약한 실정이다.

그러다가 터진 것이 한보부도고 기아사태다.

이제 국내 금융업은 그 자신이 존망의 기로에 섰을 뿐만아니라 자금중개
기능이 마비돼 국가경제 전반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지난 6월말 현재 은행권의 부실채권은 5조7천6백32억원으로 지난해 말에
비해 1백% 이상 늘어났으며 기아가 법정관리로 넘어가면 8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뿐만아니라 담보는 있지만 6개월이상 이자가 연체된 고정여신까지 합하면
부실채권은 총여신의 10%가 넘는 엄청난 액수로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문제있는 금융기관을 통폐합하는 일은
국가경제를 위해서도 더이상 미룰수 없는 시급한 과제가 됐다.

따라서 법정관리 여부에 상관없이 당장 기아사태의 해결을 서두르지
않으면 종금사의 부도 사태를 비롯해 자칫 금융대란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기아 뿐만 아니라 한보 진로 대농 우성 등 부도업체의 해결을 서둘러야
한다.

아울러 이미 그 효능이 크게 의심받고 있는 부도유예협약의 존폐내지는
기능보완도 심각하게 재고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일부 은행과 종금사들을 통폐합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은 한국이 최소한 앞으로 4~5년 동안은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금융계의 체질개선에 힘써야 본격적인 경제회복이 가능하다고
본다.

특히 이웃인 일본이 금융개혁에 소극적이었던 점이 지지부진한 경기회복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는 사실도 참고해야 한다.

때마침 IMF와 OECD 등 국제기구들이 잇달아 한국경제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작업을 벌일 예정이다.

이들의 평가결과는 국제금융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므로
금융개혁을 강도높게 추진해 우리경제의 경쟁력강화및 국재신인도 향상의
기회로 활용해야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