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동차협상이 파국으로 치닫게된 이면에는 양측 통상관계자들이
서로를 읽는 시각과 협상문화에 대한 이해부족, 미묘한 자존심다툼 등이
얽히고설혀 있었다.

이런 문제일수록 당장 겉으로 드러나지않지만 경우에 따라선 협상의
결정적인 걸림돌이 될수도 있다.

이런 문제는 하필 자동차뿐만 아니라 산적한 한.미통상 협상에 앞서
두쪽다 짚고넘어가야할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한.미 자동차협상이 시작되기 한달전인 7월 14일 앤드루 카드 미국
자동차공업협회(AAMA)회장이 이끄는 미국 자동차업계 대표들이 방한했다.

카밀 블럼 유럽자동차제조협회(ACEA)회장도 동행했다.

이미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우리 통산부에 협상을 요구해온 직후여서
카드일행의 방한은 이해 당사자인 미국업계의 사전 정찰인 셈이었다.

카드 회장일행은 주로 우리 정부관계자들을 만나 시장개방문제를
논의했지만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못하고 돌아갔다.

그들은 청와대에서부터 과천 관계부처의고위직들을 만나보려고했지만
그들의 바램대로 되지는 않았다.

조지 부시행정부에서 교통부장관을 지냈던 카드회장은 섭섭한 기색이
역력했었다고 한다.

미국 업계대표들이 얼굴을 붉히고 돌아갔을 즈음 한국자동차공업협회는
정반대로 이유로 기분이 상해있었다.

카드일행의 방한활동은 한국측 상대역인 자동차공업협회에겐 "한국협회쯤은
안중에도 없다"식으로 비쳐졌다.

카드회장일행은 오로지 정부요로를 찾아다니데는만 열중해 우리 협회를
자존심상하게 했다.

그들은 이한직전 우리 협회측과 형식적인 만찬을 가졌을뿐이었다.

이런 종류의 방한인경우 으레 상대국 협회측에 부탁하기 마련인
"방한활동의 스케줄협조"조차 부탁하지않아 우리 협회측을 머슥하게
만들었다.

아마 미국측은 "한국의 협회라는 것이 미국과 달라 이들을 만나봐야
별소득이 없고 오로지 과천관련부처를 설득해야한다"는 인식을 갖고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대해 이런 시각을 갖고있었던 카드회장일행에게 당시 우리 정부
관계자들 역시 "우리식"으로 대응했다.

과천의 경제부처 관계자들중 통산부의 직접당사자들 외엔 "양측 업계의
만남인데 우리(정부)가 나설 이유도 없지만 체면을 봐서 만나 준다"는
식이었다.

미국자동차공업협회(AAMA)는 빅3 즉,포드 크라이슬러 GM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미국업계에서도 로비력이세기로 소문난 빅3의 견해는 미국 무역대표부
(USTR)등의 통상협상에서 복사하듯이 반영된다.

미국 자동차정책을 뒤에서 좌지우지하는 빅3의 대변자인 카드 일행이
방한소득은 커녕 기분만상한채돌아간지 한달후 서울에서 한.미자동차실무협
상이 시작됐다.

서울에 온 미국무역대표부(USTR)의 주장은 카드 회장이 불러준대로
적어온 것처럼 꼭같았다.

한.미 양측의 심리적인 갈등은 정부간 공식협상과정에서도 되풀이됐다.

미국측은 서울 협상이후 워싱턴협상 일정을 짜면서 추석 하루전인
9월15일에 시작하는 것으로 잡아놓았다가 뒤늦게 일정을 조정하는 헤프닝을
빚기도했다.

통산부 관계자는 "만약 미국추수감사절 휴가직전에 서울에서 만나자고
했다면 미국측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런지 궁금했다"면서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슈퍼301조가 발동되던 순간까지 양측의 혼선은 끊이지 않았다.

한국측은 미국측이 설사 슈퍼301조를 발동하더라도 바로 그날(현지시간
10월1일)워싱턴을 방문중이던 임창열 통산장관과 미국상무장관간의 회담이
있은후에 공식발표하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다.

물론 미국측은 한.미기업협력위원회 창림총회에 참석차 방미중이던
임장관과 미국 상무장관과의 의례적인 미팅을 감안해서 슈퍼301조
발표시점까지 고려할 필요조차 느끼지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에대한 한국측의 인식은 달랐다.

마치 우리 장관이 301조 발동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데일리 미국상무장관
에게 항의를 하러 간 꼴이 돼버렸던 것이다.

한.미간의 근본적인 차이는 뭣보다 통상문제를 다루는 시각이 다르다는
것.

임장관은 데일리 상무장관을 만나고 워싱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슈퍼301조 발동은)미국이 자국업계의 이익중심으로 움직인 결과다"고
지적했다.

임장관의 이 말은 "미국이 (자동차협상에서) 연간 1백20억달러에 달하는
대한무역흑자, 양국의 전반적인 우호관계등을 고려해줄 것으로 기대했었다"는
의미이다.

우리측 일부는 301조발동직전에 터진 미국산 쇠고기파동이 혹시 미국측을
주춤거리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기대까지 했었지만 허사였다.

자동차라는 개별현안을 포괄적인 통상문제와 연계시키는 것을 당연게
여기는 한국과 그런 발상 자체에 익숙하지않을 뿐더러 극히 예외적으로
생각하는 미국이 서로를 오판하게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이동우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