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좀 하자"

그녀는 싸늘한 의학박사 본연으로 돌아가서 내심 아주 심각한 각오를
한다.

"나는 네가 너무 머리가 좋기 때문에 더 이상의 시행착오는 안 하리라고
믿는다"

그녀는 뜸을 들이고 나서 계속한다.

"그 인간은 네가 상대하기에는 너무 여자때에 찌든 지글러이고 너같은
어린 여자는 상대가 안 되는 레이디 킬러야. 나는 너를 존중하기 때문에
네 스스로 깨닫도록 아무런 처방이나 진단도 안 내리겠다.

너는 너무나 슬기롭게 자신를 다스려온 수재가 아니냐? 물론 너의
탐미주의도 인정해.엄마는 스트레스가 몹시 쌓여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레 내가 쓰러질지도 모르겠어. 마음의 병은 육체의
병으로 오는 것이니까.

나 여행 좀 하고 올게. 그동안 너를 따라다니는 문수를 좀 만나보는게
어떨까? 그 애는 둔재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도 갔고 지금은 자기가
좋아하는 식품공학을 잘 해내고 있다.

그 어머니가 그러는데 수원대학에서는 일등만 해서 여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대단하다더라. 다만 그 애가 만나고 싶어하는 여자는 너밖에 없다는
것이 비극이래. 그 엄마는 시인이니까 웃기는 소리로 그렇게 자가 아들의
심정을 전했지만 그 애도 이제 서서히 여자친구를 사귀려 하는 중이래요"

"엄마가 그렇게 오래 이야기하는 것 처음 봤다.

엄마 정말 미안해요.

엄마가 나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엄마 내 걱정은 너무 말고 여행 다녀 오세요.

그가 그렇게 험악한 남자라는 것을 안 이상 나도 각오를 단단히
해야겠어요"

"내가 한마디만 더 할까?"

"그러세요. 엄마의 말이 쏙쏙 귀에 들어오니까요"

"예를 들면 그 친구는 어머니가 없이 자라서 잔뜩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걸려 있다.

말하자면 자기보다 나이 많은 여자와 사귀어야 더 안심이 되는 그런
병이 있어.

인간은 태어나서 자라나는 동안 여러 형태의 콤플렉스에 걸려서
자라는데 그는 "마더 콤플렉스" 성향으로 컸어.

그래서 내가 언듯 듣기로는 요새 엄마의 고교 동창생인 아주 부드럽고
모성적이고 편안한 성격을 가진 여자와 자주 만난다는 소문이 있어.
자주 필드에 나타난대요.

그 골프코치는 그녀 때문에 아주 진지해졌고 올바르게 된 거 같아.

나이는 차이가 많지만 그들은 아무도 못 말리는 새로운 관계에
돌입했는지도 몰라.

내 추측이지만 엄마친구가 이혼을 했고, 필드에 둘이 자주 나타나는 것만
보아도 상당히 특별한 관계인 것만은 사실이야"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