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신평장림공단내 영창섬유 공장.

이곳에 들어서면 ''힘모아 회사를 살리자''는 문구의 대형플래카드가 눈길을
끈다.

이 문구에서 한올의 실이라도 더 생산해 반드시 회사를 회생시키겠다는
근로자들의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지난 3월 무리한 공장확장으로 1백60억원대의 부도를 내고 파산지경에
처한 회사라고 보기에는 믿기 어려운 모습이다.

9년동안 노조위원장을 연임한 조훈제(45)씨는 "세계적 품질의 재봉실을
자랑하는 일터를 그대로 사장시킬순 없다며 근로자들이 한마음으로 똘똘뭉쳐
반드시 회사를 회생시키겠다"며 굳은 의지를 보였다.

영창은 부도전까지만해도 ''비행기표''라는 고유 브랜드로 국내업체에선
유일하게 미국에 재봉실을 수출해 지난해 1백10억원의 매출을 올렸을 정도로
탄탄한 업체였다.

생산능력도 국내 최대규모를 자랑해왔다.

그러나 영창은 과다투자 등으로 빚더미에 앉게 됐다.

은행과 대리점 원자재납품업체들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결국 부도가
나고 말았다.

물량을 제공할 능력이 없어져 수출까지 중단돼 어려움은 더욱 가중됐다.

설상가상으로 부도직후 회사대표까지 잠적해버려 업계에선 회생불능이란
판정을 내렸다.

이에 근로자들은 앉아서 당할 수 만은 없다며 회사살리기운동에 발벗고
나섰다.

이 운동은 지난 9년간 노조위원장을 연임해온 조훈제(45)씨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물론 전체 근로자 1백60명중 1백여명이 떠났으나 나머지 50여명이 남아
회사회생에 온정렬을 쏟고 있다.

우선 근로자들은 조직을 정비, 2교대근무로 생산가동에 들어갔다.

야간수당도 회사정상화때까지 반납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조위원장과 근로자들은 매일 주거래은행과 대리점 등을 방문,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여름에는 휴가까지 반납하면서 생산성 향상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 결과 노력하는 회사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 대리점 은행의 지원도
다시 재개되는 성과를 거둬냈다.

또 최근에는 수출도 다시 시작하고 있다.

(주)영판이라는 섬유전문판매회사와 계약을 성사시켜 미국과 인도네시아
등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는 것.

특히 최근 미국 그롤드사와 수차례 상담을 거쳐 3t의 오더를 신청받는 등
수출계약이 잇따라 추진돼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박지현 사원은 "근로자들이 힘을 모으면 회사를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재기의 발판을 연내에 확고하게 마련하겠다"며 강한 의욕을 보였다.

영창은 근로자들이 쏟은 각고의 노력으로 월 1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등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10월 들어서는 부도 전만은 못해도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약간씩의 이익을
내고 있다.

그래서 사원들도 상여금과 월급을 정상적으로 받아가고 있다.

조위원장은 "사원들이 회사를 운영한 이후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어
회사가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다"며 "영창의 기술력과 사원들의 단결력을
인정해주는 유능한 기업인이 회사를 하루빨리 인수, 정상적으로 공장이
가동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산=김태현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