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김일성 사망이후 만 3년3개월만에 노동당 총비서직에
추대됨으로써 한반도의 북쪽에 김정일체제가 공식 출범하게 됐다.

북한중앙방송은 8일 김정일의 당총비서 추대사실을 보도하면서 취임시기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빠르면 10일 노동당창건 52주년에
맞춰 총비서직에 취임하고 가까운 시일내에 국가주석직에도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중앙방송의 보도는 김정일이 북한의
최고권력을 승계했음을 공식선언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잘 알려진대로 북한의 모든 권력은 노동당에 원칙을 두고 있다.

당총비서는 이러한 노동당을 실질적으로 총괄지휘하는 최고의 권력자이다.

이로써 북한은 김일성 사망이후 유훈통치를 토대로 비상관리체제로
이끌어오던 파행적인 국가운영을 마감하고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정상화된
국가경영체제를 갖추게 된 셈이다.

김정일이 3년 넘게 미뤄왔던 권력승계를 갑자기 단행하게 된 것은 더이상
권력승계를 미룰 명분이 없을 뿐더러 더 시간을 끌어봐야 현상황이 크게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절박한 경제난은 해마다 악화될 뿐더러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그동안 체제위기 극복의 돌파구로 삼아온 미국과의 관계개선도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이같은 상황은 어차피 비정상적인 국가운영체제로는 타개하기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김정일체제의 출범이 무엇보다도 북한주민들을
기아로부터 구출하는 계기가 돼야하며 경제난 해결에 국가경영의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정일은 당분간 김일성의 카리스마를 자신에게 옮기는 상징조작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려하겠지만 한계상황에 이른 경제난을 그대로
방치한채 체제안정과 정치 외교적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분명히
난센스이다.

하루빨리 ''주체경제''에 의한 자급자족식 폐쇄경제체제에서 벗어나
개혁과 개방의 세계적 흐름에 합류하길 바란다.

총체적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진.선봉지역의 개방실험만으로는
부족하다.

보다 과감하게 개방의 폭을 확대하고 대외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

김정일체제의 출범에 대해 일부에서는 남북관계의 개선 계기가 될것이라는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너무 성급한 기대라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대남정책에 있어 김정일체제가 김일성시대와 뚜렷이
구별되는 새로운 정책을 취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김정일이 김일성에 비해 개방과 개혁정책에 전향적인 입장이라고는 하지만
김정일이 그동안 대남문제를 전담하며 남북관계를 긴장과 화해의 반복속으로
몰아왔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로서는 김정일체제의 출범이 내년 2월로 예정된 우리의 새정권 출범과
맞물려 남북관계 전반에 미칠 파장에 미리 대비하는 냉정한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