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를 소재로 택했다.
곽경택 감독이 연출한 "억수탕"이 그 영화.
"산부인과"가 출산을 둘러싼 여러 행태를 통해 남성 위주의 사회체계를
고발했다면 "억수탕"에서는 우리 이웃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 돋보인다.
부산영화제 "오픈 시네마" 부문 (11편)에도 선정됐다.
작품은 영화감독과 사진작가인 남녀를 관찰자로 내세워 남탕과 여탕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누드를 찍는 사진작가 정미 (방은희)는 이상적인 모델을 찾던중
목욕탕에 가고 영화감독 완기 (김의성)는 삼류에로물을 연출해달라는
제작자와 함께 목욕탕을 찾는다.
이들이 목욕탕에서 만나는 사람은 "시원하게 밀지 못한다"고 며느리를
타박하는 시어머니, 남편 홍보를 위해 때밀이에 나선 국회의원 후보 부인,
러시아미녀를 탕에 들여보내 사람들 시선을 뺏은 뒤 옷장을 터는 도둑,
어린이들에게 강제로 때를 밀게 하는 동네깡패, 성병에 걸려 병원을
찾은 뒤 목욕탕에 간 승려, 비만한 소년의 때를 미느라 허리가 휘청하는
때밀이 등.
모두 부정적인 모습 뿐이다.
그러나 조금 지나면 상황은 반전된다.
시어머니는 지친 며느리를 위로하고 때밀이는 아들 (뚱뚱한 소년)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은 것이었다.
승려의 병은 출가한지 10년만에 작부로 변한 아내를 만났다가 얻은 것.
이런 모습을 본 사진작가는 전에 찍은 가식적인 누드를 모두 던져버리고
감독도 힘을 얻고 돌아선다.
휴먼스토리풍의 모범답안같은 결론.
그러나 "산부인과"의 긴박감 있는 전개와 달리 이 영화는 군데군데
늘어져 지루한 느낌을 준다.
또 등장인물중 깡패는 영화 "넘버3"의 조필 (송강호)을 모방한 혐의가
짙다.
소재가 신선하고 시선이 건강하지만 진행기법은 미숙하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18일 명보 허리우드 개봉.
< 조정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