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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의열전] (41) 백옥헌 이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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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은에게는 4남 1녀의 자녀가 있었다.

    장자 종덕(?~1388)은 문과를 거쳐 봉익 대부(종 2품) 지밀직사사의 재상의
    지위에 올랐으나 목은이 환갑 되던 해인 우왕 14년(1388) 5월8일에 부모에
    앞서 돌아간다.

    목은 환갑 하루 전날의 일이었다.

    차차 종학(1361~1392)은 14세에 성균시에 합격하고 16세에 문과에 합격하여
    부조이래의 문풍을 과시하며 28세에 벌써 승정원 우대인(정 3품)으로
    요동정벌에 나선 우왕을 호종하여 평양에 가는데 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
    일파가 우왕을 폐위하기 위해 우왕이 신돈의 아들이라고 억지를 보릴때
    감연히 홀로 나서서 공민왕이 인정하여 강녕군을 삼았고 명나라에서도 인정
    했었던 사실을 들어 이의 부당성을 지적하니 이성계 일파의 미움을 사서
    부친 목은과 함께 공양왕 즉위년(1389) 12월1일에 관직에서 쫓겨난다.

    29세에 벌써 밀직사사 우문관 대제학 영춘추관사의 재상 반열에 올라 있던
    종학은 동문수학한 정도전이 가장 꺼리고 두려워하던 대상이었다.

    그래서 정도전은 스승인 목은과 함께 종학을 반드시 죽이려 들어 공양왕
    원년(1390)에 이들 부자를 청주 옥에 가두고 대간을 시켜 죽이라는 상소를
    거듭 올리게 한다.

    그런데 청주 성이 물에 잠기는 천변이 일어나 청주 백성들의 뜻으로 이들을
    죽일수 없게 되자, 정도전은 조선이 개국한 직후인 조선 태조 원년(1392)
    8월에 이종학을 경상도 함창에서 전라도 장사로 유배지를 옮겨가게 해 놓고
    체핵사 손흥종으로 하여금 도중에서 이를 처치하게 하니 흥종은 8월23일
    거창 무촌역에서 종학을 때려도 죽지 않자 목을 매어 죽인다.

    이때 종학의 나이 32세였다.

    그래서 4년 뒤인 태조 5년(1396) 5월7일 목은이 여주 신륵사 앞강에서
    정도전이 보낸 독주를 마시고 숨질 때는 막내 자제인 이종선(1368~1438)
    하나만 남아 있어 그 장례를 치르게 된다.

    종선은 목은이 41세에 낳은 만득의 막내아들이었다.

    그래서 더욱 애지중지하며 키운 귀염둥이였는데 부조의 가풍을 이어받아
    총명호학하였으므로 벌써 15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의 멸망과 운명을 같이하던 가문의 몰락으로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다가 만년에 이르러 조선 태종이 목은을 복권시키고 그 충절을 현양하게
    되자 자헌대부(정2품) 판중추원사의 조선 벼슬을 받아들여 조선왕조의
    개국을 인정하고 만다.

    이가 곧 백옥헌 이개의 조부이다.

    이개가 22세 때인 세종 20년(1438) 3월14일에 이종선이 71세로 돌아갔으니
    그의 장손이던 이개가 그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개는 세종 18년(1436) 병진 4월13일에 실시한 별시에서 문과에 급제
    하는데 이는 명나라 영종 황제의 등극을 경하하기 위해 치러진 특별시험
    이었다.

    이미 69세의 극노인이 되어 국파가망의 처절한 환난을 겪을 대로 겪으며
    살아온 이종선에게 장손인 이개의 과거급제는 만감을 교체하게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3남인 이계전(1404~1459)이나 4남인 이계완이 세종 9년(1427)과
    16년(1434)에 각각 과거에 급제하였을 때와는 또다른 감회가 있었을 것이다.

    장자 계주는 나라와 집안이 함께 망하던 시기에 나서 과거에 응시할
    기회를 갖지 못했었는데 그에게서 난 장손이 과거급제를 하였으니 가문을
    다시 일으킬수 있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더구나 계주는 전실인 안동권씨의 유일한 소생이었다.

    전실 안동권씨는 찬성사 권균의 따님으로 나라가 망하고 집안이 난가가
    되어 있을때 갖은 고생을 다 하다가 다만 일점 혈육인 계주 하나만을 남기고
    젊은 나이로 타계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계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는데 그의 장자인 이개가
    당당히 문과에 급제하여 그 맑은 재주와 빼어난 시문을 세종으로부터 인정
    받고 집현전 학사로 선발되기에 이르렀으니 이종선이 얼마나 감계무량
    하였었겠는가.

    이종선의 후실 안동권씨는 양촌 권근(1352~1409)의 장녀이었다.

    그러니 이들 두 권씨는 모두 명문 안동권씨를 일으켜 세운 국재 권부
    (1262~1346)의 현손녀들로 8촌 자매간이 되는 셈이다.

    그들의 친정 부친인 권균과 권근은 6촌 형제간인 동시에 목은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동문친구들이었다.

    그래서 목은의 수제자이던 권근은 자신의 장녀를 스승 목은의 막내 자제
    에게 후실로 선 듯 내어 주어 전실 자식인 계주를 친자식처럼 돌보아 기르게
    함으로써 스승의 가문을 지켜나가게 하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든 권양촌의 장녀인 후실 안동권씨는 이종선에게 출가해 와서 계린
    (1401~1455), 계전, 계완, 계정 등 4남 2녀를 두게 되는데, 계린은 벼슬이
    좌찬성에 이르고 계전은 영중추부사에, 계완은 사간원 정언, 계정은 사헌부
    집의에 이른다.

    끝의 두 아들들이 현관에 이르지 못한 것은 이개가 사육신의 하나가 되어
    멸문의 화를 당하였기 때문에 그에 연좌된 탓인데 그나마 벼슬을 유지할수
    있었던 것은 이계전이 수양의 측근이 되어 김종서와 안평대군을 제거하는데
    적극 참여하였기 때문이다.

    충의의 가문에서 이런 반역아가 나게 된 것은 순전히 그 외가으 영향
    때문이었다.

    외조부 권근의 손자로 수양의 수족이 되었던 외사촌 아우 권남(1416~1465)
    의 소개로 이계전은 수양의 측근이 되었던 것이다.

    권남은 그 부친인 지재 권제(1387~1445)가 "고려사"를 왕명을 받들어
    편찬하면서 사사로운 정리로 곡필한 것이 발각되어 세종 31년(1449)
    3월22일에 그의 고신과 시호를 추탈당하게 되니 그 환수의 방편으로 수양
    에게 빌붙어 반역을 도모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그 내종 사촌형인 이계진
    을 포섭하여 수양의 측근을 만들어 갔던 것이다.

    당시 집현전의 명망 있는 학자로 소문나 있던 이개도 포섭하고자 하여
    양대군이 동갑인 이객를 찾아가서 친교를 터서 붕우의 맹약을 맺기도 하나
    이개는 수양의 음모를 알아차리고나서 오히려 셋째 숙부인 이계전에게
    수양과 단교할 것을 간청하였다고 한다.

    이계전이 그 외사촌 아우인 권남과 부동이 되어 이개의 충고를 듣지 않고
    수양의 주구가 되어 김종서와 안평대군을 죽이는 일에 앞장서서 정변을
    성사시키고 정난일등공신에 병조판서가 되자 이개는 이계전과 거의 숙질의
    인연을 끊고 살았던 듯하다.

    그러나 이를 눈치 챈 세조는 이계전의 충성심을 시험하고자 하여 등극
    직후인 즉위년(1455) 8월16일에 창덕궁으로 상왕인 단종을 알현하러가서
    개국, 정사, 좌명, 정난의 4공신및 그 후손들과 회맹하는 연회를 끝내고
    경복궁 사정전으로 돌아와 2차연회를 베푸는 자리에서 술이 과하니 그만
    마시고 들어가라는 이계전의 충정어린 진언에 불같이 노하여 그의 머리채를
    납아채어 뜰 아래로 끌어내려 곤장을 치는 모욕을 준다.

    그 대목을 "세조실록" 권 2 세조 원년 올해 8월 기미조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기미에 상감이 창덕궁으로 가서 노산군(단종)을 알현하다. 개국 정사
    좌명 정난 4공신 등이 맹서하는 족자를 상감과 노산군에게 받치자 상감이
    공신들에게 나누어 주고 이어 잔치를 베풀라고 명하였다.

    왕세자및 양녕대군 제, 효녕대군 보 등이 시종하여 4공신과 그 친자및
    적장손을 인정전 바깥 회랑에서 먹이는데 음악이 연주되고 무고가 들어오자
    제가 비파를 끌어안고 타기 시작하매 여러 공신들이 차례로 일어나 춤추고
    음악이 시끄러워지니 상감 역시 일어나 춤추었다.

    연회가 파하자 영흥대군 염의 집으로 갔다가 환궁하여 사정전에 이르니
    임영대군 구 및 염, 병조판서 이계전, 병조참판 홍달손(1415~1472), 도승지
    신숙주(1417~1475)가 시종하였다.

    계전이 조용히 이뢰기를 "오늘 상감의 술이 과한 듯 하니 안으로 들어가기
    를 청합니다"함에 상감이 노하여 이르기를 "내 몸가짐은 내 맘대로 하거늘
    네가 어찌 나를 가르치려 하느냐"하고 관을 벗기게 하며 홍달손에게 명하여
    머리채를 잡아 뜰로 끌어내리게 하고 시위 군사를 불러 매질하게 하면서
    이계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네 죄는 비단 이것뿐만이 아니다. 접때 의종부가 국사 맡는 것을 폐지하지
    말라는 일도 하위지와 같은 마음으로 아뢰었으니 너희들의 학술이 모두
    올바르지 않고 너는 지극히 간휼하다. 병조의 장관으로 둘 수 없으니 네
    직책을 파하여 홍달손으로 대신하게 하겠다"

    한참 있다가 다시 앞으로 오라고 햇 이르기를 "내가 평시에 너를 사랑하는
    것이 비길데 없는데 너는 어찌 내뜻을 헤아리지 못하느냐?" 하고 신숙주를
    시켜서 이렇게 물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내가 하는 것보다 누가 더하겠느냐. 내가 너를
    사랑하는 까닭으로 너를 좌익공신의 높은 등급에 두려하는데 너는 하고 싶지
    않느냐"

    계전이 머리를 두드리며 감사하고 인해서 실성통곡하니 상감이 용상에서
    내려와 왼손으로 계전을 잡고 오른손으로 숙주를 잡아 일으키며 함께 서서
    술을 따도록 하였다.

    계전등이 사양하며 일어나지 않자 상감이 이르기를 "우리들은 옛날의
    동료인데 함께 서서 술을 따른들 의리에 무슨 해가 되겠는가"하니 부득이
    이를 따랐다.

    상감이 이르기를 "내가 계전에게 헤아릴 수 없는 욕을 보였으니 헤아릴수
    없는 은헤를 베풀겠다" 인해서 이를기를 "나는 너게 어떤 사람이냐" 하니
    계전이 이르기를 "예전의 동관입니다"

    상감이 크게 웃고 임영대군 구로 하여금 주먹으로 계전을 때리게 하였다.

    숙주가 이르기를 "내가 만약 주먹으로 친다면 비록 전순의나 임원준 같은
    명의가 좌우에게 번갈아 구해낸다 해도 끝내 효험이 없을 것이다" 하였다.

    겸사복 최적에게 명하여 호무를 추라고 명하였는데 최적은 향화인(귀화인)
    중추원 부사 최보로의 첩의 아들이었다.

    또 계전으로 하여금 일어나 춤추게 하고 파하니 밤 이경이었다"

    이 사건이 있은지 20일 뒤인 9월 5일에 이계린, 이계전 형제를 모두
    좌익공신 2등에 봉하고 있다.

    이개를 꺼려서 였던지 한확 윤사로 권남 신숙주 한명회를 1등으로 하면서
    이계전은 2등으로 한 것이다.

    김종서와 안평대군을 살해하고 나서는 이계전을 정난일등공신에 봉하고
    신수주를 2등에 봉하던 일에 비교하면 큰 변화라 하지 않을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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