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원나라때의 증선지가 지은 "십팔사략"에는 신화시대의 성군이었던
요의 덕을 칭송하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요임금이 나라를 다스린지 50년에 이르렀을 때 세상이 너무 조용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임금은 어느날 자신이 펴는 정치가 잘 되어 가고 있는지 걱정이 되어
서민으로 변장하고 궁궐을 몰래 빠져나와 거리를 살폈다.

어느 길거리 모퉁이에 이르니 남녀노소 여러명이 많은 음식들을 차려놓고
즐겁게 놀고 있었다.

이들은 불룩해진 배 (복)를 북 (고)으로 삼아 두들겨 장단을 맞추고
땅 (양)을 쳐서 (격) 가락을 맞추어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노래의 내용은 이러했다.

"해가 뜨면 열심히 일하고 해가 지면 쉬는구나/밭을 갈아 배불리 먹고
샘을 파서 물을 마시니/임금이 누구인지 알아서 무엇하리"

요임금은 그제서야 안심하고 궁궐로 되돌아갔다.

이 고사에서 고복격양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뒤 그 말은 먹을 것이 풍부하여 태평성대가 되었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또 여기에서 태평성대를 노래하는 격양가라는 고사성어가 파생되었다.

산업화 이전의 우리 농촌에서도 가을 추수때 여러가지 풍년가를 흥겹게
불렀다.

이 노래들을 격양가라 이름했다.

농사가 풍작이 되었을 때는 물론 어떤 일이 잘 되거나 끝났을 때도
격양가를 불렀다.

올해도 쌀농사가 사상 최대의 풍작을 이루어 격양가를 부르게 되었다.

대기업의 잇단 부도, 실업과 구직난, 주가 폭락 등으로 대표되는 불황의
불안감을 다소나마 불식시켜줄 것으로 기대되는 낭보가 아닐수 없다.

아무튼 증산된 물량이 가격폭락으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낳지 않게
당국의 세심한 대비책이 마련되어야만 격양가가 격양으로 돌변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다른 작물에서도 수급조절 실패로 농민들을 멍들게 한 사례가
많았지 않았던가.

올해의 쌀대풍이 요임금시대의 고복격양을 재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어긋나게 대선을 둘러싼 여야간의 이전투구가 마음을
무겁게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