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자동차공세로 부터 숨돌릴 사이도 없이 이번에는 유럽연합(EU)의
위스키 공세에 정면 대응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한국과 EU간의 주세분쟁을 다룰 세계무역기구(WTO)내 한-EU 주세 패널이
오는 16일 설치되기 때문이다.

한-EU 주세분쟁이 당사자간 협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결국 WTO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게 된 것은 이유야 어떻든 유감스러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EU측은 지난 96년 일본을 WTO 주세 패널에 끌어들여 항복을 받아낸바
있어 무척 고무돼 있다는 소식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사안이 일본과 비슷하다는 인식이 WTO내에 일반화되어
있어 매우 힘든 싸움을 할수 밖에 없을 것같다.

한-EU 주세패널 설치는 EU측의 요구에 따른 것인만큼 한국으로서는 수세적
입장일 수밖에 없겠지만 치밀한 대응논리로 당당하게 맞서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일본과 한국의 케이스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패널리스트
(재판관)들에게 인식시켜야 할 것이다.

EU측이 문제삼고 있는 것은 왜 위스키와 소주의 세율이 다르냐는 것이다.

이는 일본에 대해서도 똑 같이 제기했던 문제이다.

일본의 경우 대응논리가 빈약해 주세 패녈에서 패배함으로써 소주와
위스키 간의 실질세율격차를 3%포인트로 줄였지만 한국의 주세구조는
일본과 다를 수밖에 없다.

일본의 경우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의 시장점유율이 비슷하지만
한국의 소주시장은 전적으로 희석식 소주에 의존하고 있어 소주와
위스키간에 대체경쟁관계가 없다.

따라서 소주와 위스키간의 세율격차는 당연하다고 할수 있다.

우리 정부는 EU측에 현재 1백%인 위스키세율은 그냥 두뇌 소주세율을
최고 1백%까지 인상하겠다는 대폭적인 양보안을 내놓았지만 EU측은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EU측은 세율격차를 해소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위스키의 세율을 끌어내리겠다는 속셈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는 명백한 조세주권 침해로 규정해 마땅하다.

만에 하나 이번 패널에서 우리측에 불리한 결과가 나올 경우에 대해서도
정부의 철저한 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WTO 상소기구에 재심을 요청하는 것은 물론, 여기서 패소한다 해도
시정계획서 이행기간을 최대한 확보해 국내 소주시장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아울러 이번 주세분쟁을 보면서 우리 소비자와 기업도 크게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지난해 우리의 위스키 수입증가율이 53.6%로 세계1위를 기록하면서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의 위스키 소비국으로 떠올랐다는 통계로 볼때
위스키분쟁은 우리가 자초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거센 개방 파고로부터 국민경제를 보호하는 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국민 스스로가 통상압력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는 사치성 상품의
소비를 자제하고 기업도 눈앞의 이익만을 좇는 무분별한 수입풍조에서
탈피하는 등 민간부문의 소비건전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