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렬 <통일원 인도지원국장>

최근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의 식량사정이 계속 어려워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문제가 우리사회의 중요한 논점의 하나로
대두되고 있다.

대북 식량지원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은 대체로 북한주민들을 도와야
한다는 시각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지원방법 등에 있어서는 의견이 분분한 실정이다.

북한은 지난 80년대 후반 이후 매년 2백만t이상 식량부족 사태를 겪어왔다.

북한의 식량사정이 이처럼 악화된 것은 기본적으로 북한 사회주의체제의
한계와 정책의 실패에 따른 결과다.

특히 매년 국민총생산(GNP)의 25%가 넘는 군사비(96년 57억달러)를
지출하고 김일성 우상화와 체제선전에 연간 9억달러씩 투입하는 자원배분의
왜곡이 북한 식량문제를 악화시켜왔다.

95, 96년 연이은 수해는 이같은 요인들이 누적돼 한계상황에 달한
북한의 식량사정을 보다 악화시킨 것이지, 식량부족 사태의 근본원인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구적인
노력은 거의 하지 않은 채 국제사회 등 외부의 지원을 얻어내 다급한 상황을
모면하려는데 급급해하고 있다.

또 지난 8월 미국 하원 방북단의 조사를 통해서도 지적된 바와 같이
지원식량의 군사적 전용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북한 식량난의 본질적 특성을 감안할 때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은
몇가지 원칙하에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째 식량지원이 북한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둘째 식량지원과 함께 북한의 농업생산성 향상을 위한 개혁-개방 등
자구적인 노력을 유도해야 한다.

셋째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식량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그동안 정부는 북한의 적대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95년 쌀 15만t
지원을 포함, 유엔기구 등을 통해 총 2억6천2백37만달러 상당의 식량을
지원했다.

또 지난 8월에는 아동용 배합분말을 포함해 의약품및 영농자재 등
1천만달러 상당의 대북 추가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민간차원에서도 95년 이후 2천4백만달러 상당의 식량및 구호물자를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지원했다.

95년 이후 우리의 대북지원은 같은 기간에 이뤄진 국제사회의 대북지원
규모(2억9천여만달러)와 비슷한 수준이다.

특히 지난 5월 중국 베이징(북경)에서 열린 남북적십자 대표접촉에서는
민간차원의 대북지원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

남북 양측은 접촉에서 대북 구호물자의 수송경로및 분배지역 확대,
기증자 표기, 지정기탁 허용 등 그동안 민간단체들이 요구해왔던 희망사항을
대부분 수용한 "남북적십자간 합의서"를 채택했다.

이 결과 6월 이후 남북적십자간 합의에 따라 북한의 신의주 만포 남양
등 육로 세곳과 남포 흥남 등 해로 두곳을 통해 중국산 옥수수및 라면
밀가루 등 국내산 물품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지원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
식량상황은 내년에도 여전히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도 대북 식량지원을 위한 노력은 계속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한 식량난 해결을 위해서는 긴급 구호차원의 인도적 지원과
함께 체계적이고 근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4자회담 등 남북대화를 실현시켜 우리측이 지난 96년 "8.15
경축사"에서 밝힌바 있는 "북한 식량난 해결을 위한 남북한 협력방안"을
하루빨리 실천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 지원식량의 군사적 전용방지 등 분배의
투명성확보를 계속 추구하는 동시에 북한에 대해 식량난해결을 위한 자구
노력을 촉구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북한
식량난의 본질과 남북한 관계 특수성에 대한 균형된 시각을 갖고
북한 식량문제 해결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수 있는 방향으로 차분하고
질서있게 대북 식량지원을 추진하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