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현지시간) 맨해턴의 한 호텔에서는 미국 금융회사 레먼 브러더즈
사 주최로 "한국경제 바로 알기"조찬 세미나가 열렸다.

연사로 나선 한국 정부의 김기환 순회대사는 미국 기관투자가들에게 "기아
사태 등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경제성장률은 여전히 견실하며, 수출 역시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요컨대 이날 행사는 "한국경제의 "펀더멘틀즈"가 탄탄하니 한국금융기관과
기업들에 자금 좀 많이 대달라"는 국가 차원의 IR(투자설명회)였다.

김대사의 뉴욕 나들이는 지난 9월초를 포함해 한달 남짓새 두차례나 된다.

한보 삼미 사태 등으로 뉴육 금융가에 "한국 주의보"가 확산되기 시작했던
지난 5월 한승수 전 경제부총리의 뉴욕 방문까지 합치면 올들어서만 한국의
비중있는 경제관료가 세차례나 뉴욕 투자가들을 불러놓고 "자금 협조"를
당부한 셈이다.

김대사의 이번 방문이 어떤 성과를 거둘 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런 "고관"들의 나들이가 기대했던 효과를
냈다고 보기는 힘든 상황이다.

바로 며칠 전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즈(S&P)가 한일-외환-신한
-제일-장기신용-산업 등 대부분의 한국 주요 은행들에 대한 단기 신용도를
하향 조정했다.

일본 금융관게자들은 고위 인사들의 잦은 뉴욕 나들이가 미국 기관투자가들
에게 거꾸로 "한국 돈 사정이 정말 어려운 모양"이란 생각 갖게 하는 역작용
도 있는 것 같다며 걱정하고 있다.

8월하순께 5대 시중은행 행장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뉴욕을 방문해 "돈
구걸"을 하고 간뒤 오히려 한국계 은행 평판이 나아졌지 않았느냐는 "자체
분석"까지 동원하기도 한다.

그 시중은행장들은 지난해 미국 모 은행의 고위 인사가 서울에 가서
면담을 신청했을 때 "일정이 바쁘다"는 이유로 문전박대했던 장본인들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날 설명회장에 나온 미국계 은행의 한 펀드 매니저는 "지금의 한국상황은
말로 납득시킬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면서 "한국 시중은행들이 동남아를
포함한 국내외에 벌려놓고 있는 자산부터 정리해 몸집을 가볍게 하고 캐시
플로를 개선하는 자구 노력부터 보이는 게 순서 아니겠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이학영 < 뉴욕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