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기상도가 바뀌고 있다.

구소련붕괴이후 양극체제가 무너지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일극체제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겉으로나마 미국을 견제할수 있는 나라는 프랑스와 중국정도.

프랑스의 견제는 그러나 과거의 영화를 못잊는 거품같은 자존심일 뿐이다.

실제 영향력은 없지만 그래도 모양을 내겠다는데 불과하다.

중국도 아직 미국에 본격 대항하기는 역부족이다.

미국이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맹주역할을 차지할 수 있게된 원인은
무엇인가.

직접적인 도화선은 "경제부활"이다.

70, 80년대 일본경제의 급성장에 속수무책이었던 미국.

눈덩이처럼 불어가던 무역과 재정의 쌍둥이적자에 신음하며 일본기업들의
본토공략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러던 미국이 때마침 몰아닥친 인터넷등 정보통신시대를 주도하면서
기록적인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정부와 민간분야 모두 "경쟁력 제일주의"를 주장하며 규제완화와 구조조정
(리스트럭처링)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인플레 없는 성장지속"이라는 금세기 최대 호황국면을
이끌어냈다.

지금은 호황의 끝이 어디인지를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정도의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다.

그렇다고 미국중심의 일극화가 다른 나라들의 경제발전을 위축시키고
있는것은 아니다.

미국을 상대할 만한 또하나의 강한 극이 잠시 사라졌다는 뜻일뿐이다.

미국의 파트너가 되기 위한 세계각국의 노력은 지금도 눈부시다.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

미국과 끊임없이 무역마찰을 빚고 있는 일본은 위축된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이다.

과거 경제성장의 일등공신으로 평가됐지만 지금은 재도약의 최대 걸림돌로
지적받는 대장성의 기능축소를 포함한 대대적인 행정.금융개혁이 추진중이다.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가 개혁의 최전선에서 직접 깃발을 들고 있다.

이번 개혁작업이 성공할 경우 일본경제는 한차례 더 비상, 미국경제를
또다시 위협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성장도 가파르다.

덩샤오핑(등소평)의 시장개방정책이후 자본주의적 발전을 추구하고 있는
중국.

이미 세계 중저가시장을 "메이드 인 차이나"로 휩쓸고 있다.

최근 중국공산당 제 15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전권을 장악한 장쩌민(강택민)
주석도 국유기업사유화등 시장경제를 확대발전시킬것이라고 천명해 놓고
있다.

중국의 시장경제 발전속도가 더욱 빠를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 7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홍콩을 반환받은 중국.

세계무대에서 더욱 자신감 있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발언권도 훨씬 강해졌다.

앞으로 WTO(세계무역기구)가입이 이뤄지면 국제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경제통합작업이 한창인 EU도 미국과 상대할 분명한 한 축이다.

유럽통화통합(EMU)은 최근 협상막바지로 접어들면서 다소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큰 물줄기가 "하나의 유럽"이란 통합의 기조로 흘러간다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최근 EU 각 나라간에서 일고있는 불협화음은 역설적으로 거대 단일시장의
탄생이 임박했음을 예고해 준다.

예정대로라면 99년부터 "유러화"라는 단일통화가 본격 거래된다.

유럽이 하나의 경제단위가 된다는 의미다.

유러화는 "달러화" "엔화"와 함께 세계3대 주축통화중 하나로 자리잡을
것이다.

EU가 최소한 "세계 3대 경제권"의 하나가 된다는 설명이다.

이밖에 아세안 중남미권 등도 새로운 성장의 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아세안국가들은 최근 통화위기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란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번 위기만 딛고 일어나면 아프타(AFTA.아세안자유무역지대)의 활성화를
통해 인구 10억을 포괄하는 하나의 경제권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등 각국의 활기찬 경제성장을 고려할때 아세안이
그리고 있는 미래는 "장밋빛 꿈"이 아니다.

조만간 공사가 끝나는 구체적인 "설계도"란 평가를 받고 있다.

중남미국가들도 독자적인 경제통합을 이뤄나가고 있다.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 메르코수르(MERCOSUR.남미공동시장)를 통해
역내 경제권을 묶는 작업이 한창이다.

급속한 성장세를 보이며 발전하는 이 지역도 미래의 경제기상도를
그릴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엘니뇨 현상"이 세계기상도를 좌우하듯이.

세계경제 기상도는 지금도 매일 바뀌고 있다.

이를 변화시키는 힘은 경제.

한마디로 경제력의 변화가 국제관계에서 힘의 균형을 바꿔놓는 셈이다.

세계각국의 힘의 균형도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결국은 경제에
달려있다.

<최필규 국제1부장>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