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르디난드 피에히 회장 ]

독일 니더작센주에서 동쪽으로 30km 떨어진 소도시 폴스부르크.

인구 13만명에 불과한 이 도시는 폴크스바겐의 60년 역사가 살아숨쉬는
곳이다.

본사 건물과 공장주변은 물론 도시 구석구석에 폴크스바겐의 모든 것이
배어있다.

그러나 막상 공장을 둘러보면 "폴크스바겐이 과연 서유럽최대메이커인가"
라는 의문을 지울수가 없다.

4만4천명의 근로자가 생산하는 승용차가 연간 66만대에 불과하다.

4백만대에 달하는 그룹의 연간 판매대수에 비교하면 6분의1 수준이다.

그것도 생산차종의 대부분은 골프모델이다.

폴크스바겐그룹에 위기가 불어닥친 것은 지난 93년.

93년 한해만 매출 7천6백50억마르크에 당기순손실이 무려 20억마르크
(1조원)를 웃돌았다.

사실 위기를 맞게 된 커다란 요인은 내부에 상존해 있었다.

80년대를 통해 "양"위주의 경영전략을 추구한게 문제였다.

폴스부르크공장의 경우 가동률이 96%는 돼야 채산성을 맞출 수 있을
지경이었다.

88년에는 미국시장에서 일본메이커와 경쟁하다 실패해 철수하는 수모를
당했다.

당시 폴크스바겐은 서유럽자동차시장의 17.5%를 점유하는 최대메이커였지만
유럽최고의 "고비용 저효율"메이커라는 닉네임이 붙어 있었다.

위기극복 전략을 추구한지 3년이 지나면서부터 폴크스바겐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지난해 폴크스바겐그룹이 달성한 매출은 무려 1천억마르크(50조원).

지난 87년 매출규모의 두배에 달한다.

순익도 11억마르크로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폴크스바겐측은 불과 3년만에 이같은 "대변신"이 가능했던 요인으로
감량경영을 손꼽는다.

쿠르트 리폴츠 홍보부장은 "93년초 취임한 피에히 현회장이 기존의 확장
노선대신 감량경영을 추구한데 따른 결실"이라고 설명한다.

카리스마적인 인물인 피에히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투자규모를 3분의1로
축소하고 1만2천5백명의 국내 근로자 감원을 선언했다.

회사의 재무 운영담당 임원 대부분이 해임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폴크스바겐의 경쟁력을 유지시켜온 가장 큰 비결은 다른 메이커에
앞서 전개한 공격적인 해외진출전략 때문이었다는게 자동차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폴크스바겐의 해외진출은 경쟁메이커보다 20여년 앞선 지난 50년대부터
시작돼 현재는 멕시코 남미 중국 남아공 동유럽 등 6개대륙에 생산거점을
구축해 놓은 상태다.

이들 해외공장이 한해에 판매하는 자동차는 연간 2백40만대.

그룹 전체판매량 4백만대의 60%에 달하는 수치다.

우여곡절 끝에 이끌어 온 해외공장들이 피에히 회장 취임이후 대부분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폴크스바겐이 다른 선진메이커와 다른 점은 라인 업이 중.소형차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이다.

생산량의 대부분이 50년대부터 70년대초까지 "비틀"모델이었다면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는 "골프"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한마디로 2개 차종으로 세계자동차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폴크스바겐의 장점인 동시에 앞으로의 도약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룹측은 "파사트 아우디A8 등 8기통 럭셔리세단을 99년말께 선보여 대형
승용차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라인 업확대를 통한 "제2의 변신"이 성공을 거둘지 주목된다.

< 폴스부르크 = 이성구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