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금의 무분별한 규모확대와 방만한 운용만큼 자주 거론되면서도
시정되지 않는 문제도 달리 없을 것이다.

여론과 감사원의 거듭되는 지적을 비웃듯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공공기금의
순조성규모는 내년말이면 1백조원을 넘어서게 될 전망이다.

재정경제원이 지난 13일 국회에 제출한 35개 공공기금의 내년도 운용계획을
보면 공공기금 운용규모는 61조4천억원으로 올해에 비해 27.9%늘어나며
기금 조성누계액은 1백4조5천억원에 이르게 된다.

이같은 내년도 공공기금 운용규모는 일반회계 세출예산 70조원의 87%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이다.

정부예산의 9할 가까운 또 다른 예산이 하나 더 있는 셈이다.

정부가 내년에 긴축예산을 편성했지만 공공기금도 광의의 예산에
포함된다고 볼때 재정긴축기조의 유지는 애당초 물건너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공공기금의 운용규모가 늘어난다는 것은 사실상
국민부담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뜻이다.

공공기금의 재원은 민간부담 정부출연 장기차입금등으로 구성되지만
이 모두가 장기적으로 보면 국민부담으로 귀착되기 때문이다.

공공기금의 덩치는 이처럼 커지는데 이에 걸맞는 통제장치나 감독체제가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재경원이 전체적으로 통괄하고 있다지만 통제권 없이 협의만 할수 있을 뿐,
막대한 규모의 기금이 국회의 사전심의 없이 집행됨으로써 기금이 각종
부조리의 온상이 된지 오래다.

그런데도 기금과 관련된 먹이사슬이 워낙 커 손을 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심지어 기금조성액 규모가 정부 각 부처의 영향력을 나타내는 지표가
되고 있다니 이쯤되면 공공기금이 "눈먼 돈""주인없는 돈""정부부처의
사금고"등으로 불려지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제 공공기금 1백조원 시대를 맞아 이같은 각종 비효율과 부조리를
불식시키기 위한 근본적인 기금개혁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적절한 공적 통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처럼 기금운용을 각 부처의 자율에 맡겨둔다면 기금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 뻔하고 자의적 집행, 저리융자 등의 변칙운용을 막을 길이 없다.

기금의 계획단계에서부터 조성운용 사후관리에 이르기까지 국회의 심의와
승인을 받도록 해 효율성과 투명성을 제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신규기금 설치를 최대한 억제하고 유사기금은 과감히 통폐합해야 한다.

지난 93년 1백14개에 달했던 각종 기금이 현재 74개로 줄어들기는 했지만
중복지원을 방지하고 기금관리비의 절감을 위해서는 각 부처의 "총력저지"에
구애받지 않는 보다 혁신적인 기금정비작업이 추진돼야 한다.

우리나라의 예산제도상 모든 공공기금을 일률적으로 행정편의주의적
산물이라고 매도할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공기금 1백조원시대에도 지금과 같은 난맥상을 그대로 이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기금의 난립과 방만한 기금관리조직의 시급한 정비를 다시한번 촉구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