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경제와 정책책임자를 흔히 환자와 의사 사이로 비유한다.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경제상황을 좌지우지하는 나라는 더더욱 그렇다.

더군다나 요즘은 경제가 사경을 헤메고 있기에 이런 비유는 상당히
적절하다.

요며칠 강부총리의 "명의론"이 세간의 화제에 올라있다.

강부총리는 "한국경제의 해묵은 고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며 스스로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통화기금(IMF)에서도
처방의 내용을 인정해 주는 국제수준의 의사"라고 자평하고 다닌다.

한국기업을 모조리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병의 치료는 오로지 시장 원리에
따라 할 것이며 고통은 참아야 하고, 기아는 채권단이 알아서 할 일이며,
기업은 정부를 탓하기 전에 과도한 채무부터 줄여야 한다는 게 바로
강부총리의 국제적 수준의 처방이다.

그러나 강부총리의 이 처방에 약효를 기대하는 환자는 별로 없다.

그것은 그의 말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지당한 말씀이기
때문일 것이다.

강부총리식이라면 세상의 어떤 의사라도 완벽한 처방을 내리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술담배는 끊을 것이며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적당한 운동을 하되 과로는 절대 금물이라는 충고를 모르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화급을 다투는 환자에겐 더이상 처방이 아니다.

세상의 의사들이 "과로하지 말라고 말했지 않느냐"며 환자를 윽박지른다면
응급실로 밀려드는 우리의 환자들은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더욱이 우리의 명의는 환자의 상태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연일 지방을 돌며 "21세기 국가과제"를 열변하고 다닌다.

오죽했으면 집권여당 대표조차 "기업들이 당장 죽겠다는데 도대체 경제
부총리가 21세기 강연이나 하고 다닌다니..."라며 힐난했을 정도다.

중견기업들까지 줄줄이 부도의기에 몰리고 화의로라도 살아보겠다며
법원으로 뛰어든 15일에도 그는 홍콩의 사교모임에 날아가 "10년후의
아시아"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부총리는 이 내연하는 경제난국으로부터 차라리 도피하려는 것인가.

정규재 < 경제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