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 .. 박영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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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을 할때마다 나는 남편과 약간의 실랑이를 벌인다.
비행기를 타기 전에 유서를 쓰는 일과 공항에서 여행 보험에 드는 일이
그것이다.
그 정도는 괜찮은데 가끔 아이를 두고 여행을 갈때 누군가 한사람은
살아남아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며 앞비행기 뒷비행기에 타고 공항에서
몇시간 또는 한나절씩 남편이 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일은 정말 짜증나는
일이다.
처음에 유서를 쓰니까 친척과 이웃집 사람들이 우리 두사람의 눈을 똑바로
보지를 않았다.
꼭 무엇인가 예감을 하고 그런 짓을 하는 줄 아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이제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유서 밑에 서명을 해준다.
죽음을 준비하는 여유가 있다는 사실은 삶에 여유가 있는 것이리라.
아니 죽음을 준비하고 나면 삶이 한결 여유있어진다.
죽음에 대한 극도의 불안과 공포 뒤에는 제3의 삶이 도사리고 있다는
공상을 하게 되면 칡뿌리를 씹듯 쓴맛 뒤에 오는 달콤한 안정이 느껴진다.
막상 비행기 위에 올라앉아 이상 기류에 비행기가 덜컹대면 "누구에게
얼마를 빌렸으니 그 돈을 갚고 누구에게 얼마를 받을 것이 있으니 받아서
무엇을 하고."라고 자잘하게 써 놓은 유서를 생각하며 갑자기 모든 것이
여기서 끝나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둥실둥실한 구름위에서 산화하는 인생도 그런 대로 맛이 있을 듯하다.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은 생을 보람되게, 그리고 시간을 아끼면서 열심히
살아가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구미의 한 시골 마을 종중 땅에 부모님이 가묘를 만들때
내자리를 미리 마련해 두었다.
가묘를 완성하던 날 나는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을 눈앞에서 보면서
한없이 평온한 마음을 찾았다.
내가 아무리 뛰어도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내가 누울 곳은 이한평남짓한
곳뿐인데 뭘그리 서두는가, 뭘 그리 바둥대는가, 뭘 그리 원통해 하는가.
죽음에 대한 방정식을 그렇게 쉽게 풀고 나니 그 종착역까지 가는 길의
방정식이 환히 보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7일자).
비행기를 타기 전에 유서를 쓰는 일과 공항에서 여행 보험에 드는 일이
그것이다.
그 정도는 괜찮은데 가끔 아이를 두고 여행을 갈때 누군가 한사람은
살아남아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며 앞비행기 뒷비행기에 타고 공항에서
몇시간 또는 한나절씩 남편이 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일은 정말 짜증나는
일이다.
처음에 유서를 쓰니까 친척과 이웃집 사람들이 우리 두사람의 눈을 똑바로
보지를 않았다.
꼭 무엇인가 예감을 하고 그런 짓을 하는 줄 아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이제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유서 밑에 서명을 해준다.
죽음을 준비하는 여유가 있다는 사실은 삶에 여유가 있는 것이리라.
아니 죽음을 준비하고 나면 삶이 한결 여유있어진다.
죽음에 대한 극도의 불안과 공포 뒤에는 제3의 삶이 도사리고 있다는
공상을 하게 되면 칡뿌리를 씹듯 쓴맛 뒤에 오는 달콤한 안정이 느껴진다.
막상 비행기 위에 올라앉아 이상 기류에 비행기가 덜컹대면 "누구에게
얼마를 빌렸으니 그 돈을 갚고 누구에게 얼마를 받을 것이 있으니 받아서
무엇을 하고."라고 자잘하게 써 놓은 유서를 생각하며 갑자기 모든 것이
여기서 끝나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둥실둥실한 구름위에서 산화하는 인생도 그런 대로 맛이 있을 듯하다.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은 생을 보람되게, 그리고 시간을 아끼면서 열심히
살아가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구미의 한 시골 마을 종중 땅에 부모님이 가묘를 만들때
내자리를 미리 마련해 두었다.
가묘를 완성하던 날 나는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을 눈앞에서 보면서
한없이 평온한 마음을 찾았다.
내가 아무리 뛰어도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내가 누울 곳은 이한평남짓한
곳뿐인데 뭘그리 서두는가, 뭘 그리 바둥대는가, 뭘 그리 원통해 하는가.
죽음에 대한 방정식을 그렇게 쉽게 풀고 나니 그 종착역까지 가는 길의
방정식이 환히 보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