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 김대중 대통령후보에 대한 여당의 "비자금 폭로 시리즈"가
꼬리를 물고 있는 이즈음, 미국에서도 클린턴 대통령이 비슷한 곤욕을
치루고 있다.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이 클린턴과 집권 민주당의 작년 선거때의 불법적인
정치자금 모금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어서다.

클린턴이 자신에게 거액을 헌금한 재벌 인사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식사를
함께 하는 등 명백하게 직위를 남용해 불법적으로 정치자금을 조성했다는게
공화당의 주장이다.

매스컴의 큼직한 보도 등 "지원 사격을 등에 업고 클린턴을 몰아붙이기에
신바람을 냈던 공화당이 그러나 요즘 "뜻밖의 복병"을 만나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는 소식이다.

복병이란 다름 아니라 "클린턴만 그랬겠느냐. 공화당은 한푼의 불법자금도
조성하지 않고 선거전을 치뤘다는 얘기냐"는 여론의 매서운 비판이다.

최근 뉴욕타임즈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의 절대 다수가
"불법 정치자금 조성은 공화.민주 양당 모두의 문제"라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클린턴에게 수십만달러의 정치자금을 바친 것으로 밝혀진 로비스트
로저 탬러즈가 의회 청문회에서 "많은 돈을 헌납해야 반대급부를 받을 수
있는 풍토가 문제"라며 "기업은 잘못된 제도의 희생양일 뿐"이라고 증언함
으로써 정치판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회의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여론이 이렇게 돌아가자 클린턴과 민주당은 공화당에 재빨리 역습을
가하기 시작했다.

"특정 인사나 정당의 비리를 운위하기에 앞서 제도에 잘못이 있다면 그
뿌리를 뜯어고치는 일이 더 시급하다"며 화살을 "정치권 공동책임"쪽으로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불법 정치자금 모금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 제기와 함께 해법을 제시하지
않고 "정적"에 대한 흠집내기에 초점을 맞췄던 공화당은 여론으로부터
"파괴주의자(obstructionist:뉴욕 타임즈 12일자)"라는 지탄까지 덤으로
얻어쓰게 됐다.

기실 중.상류층을 지지 기반으로 하고 있는 공화당이 정치자금 모금에
관한 한 민주당보다 문제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런 공화당이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전제하지 않은 채 정치판의 공통
문제점을 "상대당 죽이기"에 이용하려 했던 게 자충수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신한국당이 "정치판 비자금"에 대한 여당으로서의 책임있는
해결책을 내기는 커녕 야당에 대한 무차별적 매도에 나서고 있는 최근의
상황과 맞물려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이학영 < 뉴욕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