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자금이 급속히 단기부동화하고 있는 것은 현재의 금융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돈은 속성상 "고객-금융기관-기업-금융기관" 순으로 환류돼야 정상이다.

그러나 최근의 돈흐름은 "고객-금융기관-다른 금융기관"으로 국한돼 있다.

기업으로 돈이 흘러가지 않으니 기업들이 연쇄부도위기에 몰리고 금융기관들
의 수익성도 예전만 못하다.

더욱이 최근엔 금융기관과 기업은 물론 개인들까지 마땅한 투자대상을
찾지 못하고 단기성예금에 일시적으로 돈을 예치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에따라 시중유동성은 풍부한데도 기업의 돈가뭄은 더욱 심화되는 악순환
이 되풀이 되고 있다.

<> 단기성 수신에 돈이 몰린다 =금융기관들의 수신고를 보면 단기성수신에
돈이 몰리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종금사의 경우 어음매출은 이달들어 지난 14일까지 2조9천8백43억원 줄었다.

어음매출의 만기는 대부분 3개월이다.

기업들의 신용도가 하락한 탓도 크지만 3개월단위로 돈을 굴리기에는 뭔가
불안하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게 주된 요인으로 풀이된다.

대신 만기가 정해져 있지 않아 수시로 돈을 뺄수 있는 종금사 자발어음은
2조2천5백91억원 증가했으며 CMA(어음관리계좌)도 3천4백8억원 늘었다.

일단 실세금리가 보장되는 상품에 돈을 맡겨놓은뒤 상황을 보아가며 인출
하겠다는 심리가 반영된 탓이다.

은행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은행저축성예금은 이달들어 지난 14일까지 4천6백81억원 증가했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MMDA(시장금리부 수시입출금식상품) 증가라는게 금융계
의 분석이다.

물론 MMDA는 지난 8월(5조4천2백12억원증가)을 고비로 증가세가 한풀
꺾인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최근 기업들은 당좌대출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기업형 MMDA 등을
통해 집중 예치해 놓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MMDA의 만기는 최장 한달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인출할수 있기 때문이다.

<> 돈이 금융기관에서만 돌고 돈다 =금융기관들의 자금운용이 초단기화하고
있는 것도 두드러진 특징이다.

은행 등 금융기관들은 기업대출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개인대출을 늘리려고 애쓰고 있지만 경기침체로 만만치 않다.

실제 이달들어 은행 민간신용은 3천20억원 늘어나는데 그쳐 작년 한달
증가액 3조5천4백65억원의 10% 수준에 그치고 있다.

또 신탁대출도 2처1백36억원 늘어났을 뿐이다.

은행 등 금융기관들은 여유자금을 대신 주로 단기콜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지난 16일현재 중개사를 통한 콜잔액은 11조1천2백95억원으로 지난달말에
비해 1조6백19억원(11%)이나 늘었다.

중개콜잔액이 10조원을 넘어서기는 처음이다.

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기업대출보다는 여유자금을 주로 콜로 운용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은행관계자들은 최근과 같이 불확실한 상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길어야
1주일단위로 돈을 운용하는게 고작이라고 말하고 있다.

<> 기업에 돈이 흘러가지 않는다 =돈이 금융기관 사이에서만 단기로 맴돌고
있음에 따라 기업들은 돈구하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대표적인게 기업어음(CP) 할인실적의 급감.

종금사들의 CP 할인액은 지난 14일 현재 65조4천9백63억원으로 지난달말에
비해 2조7천9백44억원 감소했다.

이는 CP할인을 통한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원활하지 못함을 뜻한다.

이같은 CP 할인액 감소속에 기업의 차별화는 한층 극심해지고 있다.

삼성그룹 등 소위 우량기업의 어음은 현재 연 14.2%대에서 할인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나머지 대기업 등은 여기에 최고 1.0%까지 더 얹은
15%대 초반에서 그나마 호가만 형성되고 있는 실정이다.

기업들은 급기야 이미 한도가 설정돼 있는 당좌대출을 끌어다 써 당좌대출
소진률은 3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 하영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