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증권가에 농담처럼 떠 다니지만 결코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말이 있다.

"증시 대책을 열번 내놔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내놓을 것도 없고요.
그보다 경제부총리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최대 부양책이지요. 아마도 주가가
100포인트는 거뜬히 오를 겁니다"

소신론자인 강경식 부총리가 이말을 듣는다면 섭섭하기 짝이 없겠지만
경제계에서 터져나오는 목소리는 노골적이다.

그들은 "기업부도와 금융혼란은 그 뒷처리가 촌음을 다투는 문제인데도
이렇게 맺고 끊지를 못하고 질질 끌다간 한국경제가 벼랑 끝으로 몰리고
말 것"이란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다.

한국시장에서 철수할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는 외국인을 보면 위기감의
실체는 더욱 선명해진다.

지표경기가 호전 조짐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 무차별 매도공세를 펼치고
있는 외국인들은 "위기수습에 대한 정책방향은 물론 내막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거에는 일이 터지면 그래도 정부가 책임을 졌으나 이제는 정치권은
물론 정부마저 "나 몰라라"고 배짱을 내밀고 있으니 더이상 마음 붙일 곳이
없다는 것.

위기감의 실체는 바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불확실성이란 대답이
자연스럽다.

미국에선 지난 90~91년 사이에 은행의 부실자산이 문제가 돼 경제가
휘청거린 적이 있었다.

그때 정부는 모든 내막을 솔직히 털어놓고 경제주체의 협력을 구한 끝에
위기상황을 돌파했다.

일본에서도 65년에 증권공황이 있었다.

당시 다나까 대장성 장관은 시중은행장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윽박지르다시피
하면서 협조를 당부했고 적자국채까지 발행한 끝에 신용공황의 위기를
벗어났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어떤가.

경제주체로 부터 협력을 얻기는 커녕, 불신만 사고 있다.

눈을 씻고봐도 미국이나 일본처럼 책임을 지겠다는 이가 없다.

강부총리는 그의 표현대로 "경제엔 임기가 없다"는 소신론자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소신을 펴기에 시간이 없는 상황이다.

일처리의 성격과 책임자의 소신이 맞지 않는다면 소신을 버리라고 하기
보다는 일의 성격에 맞는 사람을 고르는 것이 시행착오를 줄이는 길이다.

허정구 < 증권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