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경제가 모처럼 기지개를 펴고 있다.

독일 프랑스 등 주요국들의 수출증가율이 요즘 두자리 숫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경제성장률도 4%대에 육박하고 있다.

마이너스 성장이거나 잘해야 1% 선에 머물던 전형적 "저성장 경제권"이라는
낙인도 이제는 옛말이 돼 버렸다.

하지만 서유럽경제가 이처럼 회복기에 접어들고 있는데도 실업률은
낮아지기는 커녕 EU(유럽연합) 평균 11%로 25년만에 최악의 상황에 빠져있다.

고속성장의 효과가 실업해소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는 "쾌청"한데 실업자는 갈수록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게
서유럽의 "두 얼굴"인 셈이다.

서유럽이 "불황의 깊은 터널"에서 빠져나왔다는 증거는 독일과 프랑스의
상황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지난 2.4분기중 독일의 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15%나
증가했다.

작년 6월부터 올 6월까지 프랑스의 무역수지는 3백20억달러, 이탈리아
(96년5월~97년5월)는 4백22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수출활황이 서유럽경제 회복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힘입어 요즘 서유럽의 산업생산 증가율은 연간 기준으로 8%에서
10%까지 달하고 있다.

2.4분기중 독일과 프랑스의 경제성장률은 20여년만에 최고수준인 4%,
영국을 제외한 EU 14개 회원국의 경제성장률은 올해 2.25%에서 내년에는
3%를 웃돌 것이라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경제성장률만 보면 최근들어 경기가 좋다는 미국 영국을 추월할 정도다.

내년도 미국과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각각 2.4%와 2.6%에 머물 전망이다.

이같은 활황세에도 불구, 실업률은 오히려 늘고 있는게 서유럽경제의
이면이다.

5년동안 연평균 11%대를 유지해오던 실업률은 최근들어 0.2%포인트가
증가한 11.2%를 기록, 25년만에 최고수준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실업자수가 1천8백만명으로 네덜란드 전체인구(1천5백70만명,96년기준)보다
많은 셈이다.

독일의 경우 지난 8월중 실업률이 전후 최고 수준인 11.6%에 달했다.

서유럽의 고민거리는 경제회복의 파급효과를 실업률 축소로 연결하기가
쉽지 않다는데 있다.

노동시장이 탄력적이라면 호경기는 바로 실업률 감소로 이어지는데 서유럽
노동시장은 경직돼 있기 때문이다.

법인세율이 평균 54%에 이르고 실업수당도 높은 상황에서 유럽기업들은
고용확대에 주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독일기업들이 지난 85년이후 해외사업체에서 고용을 50% 늘린데 반해
자국에서는 제자리 걸음 내지는 오히려 감원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이유로 국제통화기금(IMF)은 "유럽경제가 1~2년간 활황세를 유지한다
해도 실업률을 9%이내로 줄이기는 어렵다"고 진단하고 있다.

고용과 해고조건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을 비롯해 사회보장
제도의 개선, 세율 및 최저임금의 인하 등 구조적인 문제들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IMF의 이같은 주장은 이론적으로는 맞지만 단일통화 가입에 필요한 재정
적자 축소에 주력해야 하는 요즘같은 상황에서 각국 정부가 정책의 구조조정
에 나설 형편이 못된다는 점도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서유럽의 경제회복은 얼마 안가 도중하차하는 "반짝 경기"일
가능성이 높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런던=이성구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