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주식 팔아치우기"가 멈출 줄을 모른다.

지난 17일에는 하루기준으로 외국인 주식순매도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한국증시 철수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증시에 대한 비관론 차원이 아니라 한국의 경제.정치상황을 송두리째 불신
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풍기고 있다.

외국인들은 기업부도 도미노와 금융위기, 정치불안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의 현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앞으로 어떤 행동이 예상되는지를
탐색하기 위해 본사 박영균 증권부장 사회로 긴급좌담회를 마련했다.

<< 편집자 >>

- 사회 =외국인의 매도공세가 단순한 손실 축소차원을 넘어섰다는 관측이
많습니다.

지역별 투자자별 "주식 팔아치우기"의 특징과 성격, 그리고 심각성은 어느
정도입니까.

<> 이석용 LG증권 국제금융담당상무 =외국인 매도는 지역별로 아시아계가
50%로 가장 많고 유럽계 40%, 미국계 10%정도로 판단됩니다.

투자주체별로는 헤지펀드 10%, 역외펀드 40%, 투자전문펀드가 50%로
어림됩니다.

최근 외국인 매도세의 특징은 주가수준을 따지지 않는 투매성 매도패턴
입니다.

<> 이옥성 엥도수에즈 WI카증권 서울지점장 =동남아국가에 비해 한국투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지자 9월부터 외국인의 대량매도가 시작됐습니다.

여기에다 연쇄부도가 이어지고 환리스크가 커져 지역 및 투자자형태의
구분없이 매도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 추세대로라면 이달중 주식매도금액이 3천억원을 넘을 것으로 보입니다.

<> 이남우 동방페레그린증권 조사담당이사 =외국인들의 무차별 매도는
두가지로 분석됩니다.

첫째는 기업의 수익개선이 지연돼 한국의 경제전망이 비관적이라고 보는
것이고 둘째는 아시아지역 투자펀드에 대한 환매가 계속되자 펀드매니저들이
현금을 조달하기 위해 주식을 팔고 있습니다.

자금이 중남미와 동유럽국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최소 1년간 지속될 것입니다.

한국을 제일 먼저 떠나기 시작한 사람들은 공격적인 헤지펀드들인데 이들은
당분간 한국시장에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 사회 =지표상으로는 경기가 회복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기기본요인들을 중시한다는 외국인들이 떠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표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까.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 이지점장 =일부지표가 호전되고 있는 점은 외국인들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아직 경기전반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현재의 부도사태가 심화되거나 장기화될 경우 불황의 골이 깊어질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죠.

<> 이이사 =외국인들은 경기가 저점을 통과한 것이 아니고 다시 악화돼
6~12개월후에 저점이 나타날 가능성이 많다고 봅니다.

기업부도와 금융불안으로 민간소비와 기업투자가 극도로 위축될 것이고
수출증가율도 지지부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이상무 =지표호전이 시사하는 경기회복에 대한 신뢰성보다 현재의 정치
경제상황이 보여주는 불확실성이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악화된 외국인의 투자심리가 회복되기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생각합니다.

- 사회 =잇따른 기업부도, 금융시스템 마비, 이에 대처하는 정부의 무사안일
주의 등도 외국인 매물을 불러낸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현안에 대한 외국인
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 이이사 =기아자동차문제에서 정부가 좀더 일찍 그리고 적극적으로 대처
했다면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축소돼 시장동요가 덜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은 정부의 무사안일도 그렇지만 재벌기업의 잘못된 경영방식에
비판적입니다.

이 기회에 한계기업을 정리해 무모한 투자를 감행하는 행태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 이상무 =어느 나라나 부도나는 기업, 부실한 금융기관은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불안해 하는 것은 이러한 난제에 대처하는 정부의 위기
관리능력이 부족하지 않느냐는 점입니다.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들이나 정부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없다고 보는 것이지요.

<> 이지점장 =한국경제의 위기상황은 관치금융과 민간기업들의 방만한
경영이 복합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란 시각이 많습니다.

- 사회 =외국인이 한국증시에 대해서만 불신하고 있다면 단기간의 충격으로
그칠수 있지만 한국경제나 정치상황과 같은 한국의 장래를 송두리째 불신
한다면 심각한 문제로 발전할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습니까.

<> 이상무 =경제 정치에 대한 불신이 무차별 매도공세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선을 기점으로 태도 변화가 기대됩니다.

기업부도에 따른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다면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는 실물경제에도 힘이 실릴 테니까요.

장기적으로 한국시장에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되겠지요.

<> 이지점장 =한국경제의 기본적 체력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라고 생각합니다.

경제나 정치상황이 지금같이 계속 악화된다면 한국에 대한 외국인의 신뢰는
사라지고 말것입니다.

<> 이이사 =외국인들은 한국기업들이 이번일을 계기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거치지 않으면 장기적인 경제성장이 심각한 위협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금융권 전체를 통틀어서 자기자본을 건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약 10조원에서
20조원의 돈이 필요한데 외국인이 국내 금융기관을 인수합병할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부실기업들이 쏟아내는 부동산도 외국인들이 쉽게 살수 있게끔 여건을 조성
해야 합니다.

다국적 기업들은 한국기업과 부동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사회 =당장은 11월3일로 예정된 외국인 투자한도 확대때 그들이 어떤
전략을 구사할지도 관심사입니다.

한도 확대를 전후한 외국인의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예상하고 있습니까.

<> 이지점장 =현재의 경제및 증시상황하에서는 11월에 한도를 확대한다고
해도 외국인들의 주식투자규모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장외시장(OTC)에서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고 있는 삼성전자 포철 SK텔레콤
등 일부 종목에만 매수세가 집중될 것입니다.

이들 종목을 사들이기 위해 다른 종목들을 11월초까지 계속 팔아치울
가능성이 큽니다.

<> 이상무 =한도 확대전에는 핵심 블루칩보다 덜 우량한 종목을 대거 매도,
자금을 확보하고 한도 확대이후에는 교체매매없이 핵심종목을 장기 보유
한다는 전략을 펴는게 보통이지요.

<> 이이사 =한도 확대이전까지의 매도세에 대한 변수는 외수증권의 움직임과
홍콩증시의 향방입니다.

외수증권이 블루칩을 중심으로 선취매를 할수 있고 홍콩증시가 대폭 하락
하면 우리 증시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도 있겠지요.

- 사회= 증시는 물론 경제에 대한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외국계자금의
이탈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정부도 그들의 불만을 겸허하게 수용할 때가 됐습니다.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할까요.

<> 이이사 =외국인에게 국내 기업인수합병(M&A)을 대폭 허용하고 매수.
매도자에게 과감하게 세제혜택을 줘야 합니다.

외국인 주식투자한도도 40~50%선까지는 끌어올려야 합니다.

최근 외국인들이 대기업보다 유망중소기업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점을
감안, 코스닥종목에 대한 외국인투자도 곧 바로 허용해야 합니다.

기업회계기준을 임의로 조정하는 편법도 지양해야 합니다.

채권시장 개방은 2~3년후로 미뤄도 괜찮을 듯합니다.

<> 이상무 =주가 폭락때마다 단편적인 증시부양책을 준비하기보다는
외국인들이 장기적으로 국내 주식을 보유할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게
바람직합니다.

예컨대 기업들은 수익성 위주의 투명한 경영과 주주를 우대하는 경영을
해야 합니다.

정부는 장기적인 주식투자가 가능하도록 배당률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높여야 합니다.

<> 이지점장 =우선 기아사태를 빨리 매듭짓고 기업들의 연쇄부도를 막을수
있도록 자금시장 안정에 주력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환율도 안정시켜야겠지요.

정치적으로도 안정감을 주어야 합니다.

증시공급물량을 축소한다는 의미에서 한통주 등의 상장연기도 고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수급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얘기지요.

- 사회 =장시간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리=백광엽.김홍열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