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 또다시 괴자금소문이 돌고 있다.

파격적인 금리로 거액을 제공하겠다는 중개상들이 부도위기에 몰린 일부
기업은 물론 멀쩡한 대기업들까지 유혹하고 있는 것.

정권초기 금융실명제 실시이후 횡행했던 괴자금소문이 전 정권의 비자금
으로 일부 확인된 적이 있어 업계는 또다시 소문의 꼬리를 물고 있는
괴자금의 정체파악에 분주하다.

괴자금의 손길은 주로 자금난에 직면한 기업들을 두드리고 있다.

부도위기를 가까스로 넘기고 있는 K사 관계자는 "자신을 브로커(중개상)로
소개한 전직 업계관계자가 전화를 걸어 1조원이상의 자금을 언제든지 빌려
줄테니 회장이나 사장을 만날수 있느냐"고 물어 왔다고 말했다.

화의신청을 앞두고 있는 S사에도 비슷한 내용의 전화가 2~3일에 한번씩
걸려오고 있다고 전했다.

전화유혹만이 아니다.

모협회에는 전직 공무원이 직접 찾아와 숨겨둔 거액의 자금을 운용하려는
전주가 협회회원사중 우량기업을 찾고 있다며 소개해 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내용의 자금사용을 요청받은 H사 관계자는 "중개상들은 이미 2~3개
기업들이 이 자금을 쓰고 있으며 뒤탈이 없다고 적극 공세를 펴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이 자금을 쓰고 있다고 거명한 업체들을 확인한 결과 한결같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괴자금의 실체는 여전히 루머이상의, 이하의
것도 아닌 상태다.

중개상들의 입을 통해 흘러다니는 괴자금은 금리나 상환조건이 파격적으로
좋다는게 공통이다.

대부분 금리는 연 5~6%, 상환조건은 5년거치 5년분할상환이다.

담보를 요구하지 않는 것도 공통.

또 자금출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안전하다는 것도 중개상들이
하나같이 거론하는 대목이다.

N사의 한 관계자는 "어떤 브로커는 정부고위관계자 실명을 대면서 그
사람이 자금출처를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쓰라고 하더라"고 말할
정도다.

중개상들이 당장 주겠다고 제의하는 자금은 대략 1조원정도.

어떤 기업에는 2천억~3천억원을 써달라는 요청도 있었다고 한다.

업계관계자는 "자금사정이 나빠지면서 부도나는 기업이 급증함에 따라
이같은 괴자금제의가 많아지는 것 같다"며 "전주들이 전면에 나타나지
않는데다 조건이 터무니없어 사기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실제 한 중개상은 일반인이 이용할수 없는 한국은행(중앙은행) 계좌에 돈이
들어 있다고 소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다른 관계자는 "특정 기업을 인수하려는 측의 농간냄새가 난다"고
괴자금제의를 평가절하했다.

한 관계자는 만약 "중개인들이 제의하는 자금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실명화
가 안된 사채자금이나 전정권의 비자금과 비슷한 성격의 자금일 가능성이
있다"며 "그렇더라도 부도위기를 넘기기 위해 출처가 확실치 않은 자금을
받았다가 회사 전체를 날리는 더 큰 낭패를 당할수도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 고광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