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애를 잘 맡아둘게요.

그러면 저에게는 어떻게 보상하실 거예요? 사장님은 상당한 재벌가래니까
섭섭하지 않게 해주실수 있지요? 중매비라고 생각하세유"

갑수는 시골사투리를 쓰지만 닳고 단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자기가 만나려는 애가 더 문제다.

공박사는 자신이 너무 전근대적인 방법으로 살아왔으니 이제라도
자기본위의 행복을 추구하리라 마음먹는다.

그러고 보니 인생이 그렇게 어렵고 힘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왜 자신은 환자들에게 명처방을 내주면서 그렇게 따분하고
본능을 억제하면서 살아왔는가? 길은 어디든지 열려 있는데 찾지를 않고
길이 없다 어둡다 했던가? 그녀는 밝은 아침이 찾아오고 있는 자기의
진료실 창가에 서서 이제 좀 더 적극적인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가슴을
펴본다.

오후시간에 면담을 온 환자는 박춘희 여사였다.

그녀는 들어서자마자 울기 시작한다.

언젠가 바람피우는 남편에게 폭행당하고 왔던 술꾼이라는 그 말죽거리
원주민이다.

"왜 그러세요? 말씀 좀 하세요"

그녀는 오랜만에 나타난 그녀에게 정말 기막힌 사실을 듣는다.

"여기서 한 두 정거장 가면 뉴올리언즈라는 재즈바가 있어요. 그
재즈바를 아세요?"

그녀는 그 곳을 안다고 말할까 하다가 하도 그 곳이 요상해서 입을
다물었다.

"선생님, 글쎄 그 곳에 있는 남자기생 녀석 하나가 우리 그이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하는 정보를 입수해서 그 애를 만나러 갔지요.

계집애 뺨치게 이뻐요.

그리고 말도 여자같이 해요"

공박사는 아뿔사 하는 기분으로 강은자 시인을 생각한다.

혹시 그 아이의 이름이 갑수가 아니기를 빌면서.

"그 녀석을 만났더니 우리 그이를 알기는 하지만 별난 사이는 아니라는
거예요.

오히려 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그 애를 통해서 들었어요.

우리 그이가 글쎄 자기 선배와 그렇고 그런 사이였는데 그 선배가
미국으로 장가를 가서 자기에게 소개를 해주고 떠났는데 자기하고는 과가
틀리다는 거예요"

"과라니요?"

공인수가 숨가쁘게 묻는다.

"혹시 그 사내아이의 이름이 갑순가 뭐 그런 이름 아니에요"

"아뇨 청구래요.

대구에서 온 아이인데 자기는 남자들과도 연애를 하고 여자와도
하지만 어린 남자나 여자하고 하지 당신 남편은 너무 늙고 냄새가
난대나요"

공인수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경청한다.

자기가 모르는 세계가 너무나 많다.

그런데 나오는 아이들중에 호모들도 있다는 기사를 어느 주간지에서
읽어본 기억은 있지만 자기가 갔던 청담동 뉴올리언즈가 그런 곳인 줄은
정말 까맣게 몰랐다.

그냥 재즈만 연주하는 곳인줄 알고 문수랑 미아도 드나들지만 이렇게
추악하고 고약한 이면이 있다고는 믿을 수가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