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귀래

쌍방울과 벤처기업인 태일정밀마저 무너졌다.

총체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벤처산업 육성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터라 태일정밀의 좌초는 남다른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

지난 일요일 당정회의에서 벤처펀드 투자는 소득공제하겠다는 내용까지
발표되었다.

과연 벤처산업은 우리가 안고 있는 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해결방안이
될수 있는가.

이런저런 이유에서 벤처산업의 현황을 살펴보는 것은 큰 의의가 있다.

지난 80년대 쌍둥이적자 등으로 인해 우리나라 못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던
미국은 90년대 중반부터 다분히 벤처산업에 의해 불황을 극복하고 유례없는
경제활력을 되찾은바 있다.

미국에서 벤처산업은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첨단산업 뿐만
아니라 운송 유통 등 서비스산업까지도 포함한 보다 넓은 의미의 모험산업
으로 이해되고 있다.

벤처산업이란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나 개인이 기술과 아이디어
만으로 모험을 무릅쓰고 사업을 시작하는 것을 가리켜 붙여진 이름인데,
최근에는 벤처 산업이 하이테크 업종에 집중되면서 첨단 산업이 곧 벤처
산업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특히 80년대 이후 컴퓨터 정보통신 유전공학 등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한 미국 벤처산업의 빠른 성장은 개인투자자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 주었을
뿐만 아니라, 넓게는 국가 경제에 커다란 활력소를 불어넣었다.

벤처산업이 미국 경제에 미친 활력소는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쿠퍼스&라이브랜드사의 조사에서 명확히 나타난다.

이 회사가 90년대 초 약 1천6백50개의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대상 기업의 평균 설립 연수는 1.9년에 그쳤으나, 1985~89년
사이 약 3만6천여명의 고용창출과 7억2천6백만달러의 R&D(연구개발)투자,
1억7천만달러의 세금을 납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수출효과 측면에서는 평균 설립 연수가 1.9년임에도 불구하고
전체 조사대상 벤처기업의 총수출액은 7억8천6백만달러였으며 1개업체의
평균 수출금액은 3백30만달러에 달하였다.

이는 벤처기업 종사자 1인당 수출금액이 2만1천5백70달러에 달하는 것이며
투자액 1달러당 수출금액도 0.5달러로서 5백대 기업대비 평균 4배이상 높은
수치이다.

벤처기업의 슬림화된 조직과 높은 생산성,R&D 투자비율및 높은
수출파급효과는 겉으로 나타난 통계이상으로 미국 경제의 체질강화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일으켰다.

80년대 중반이후 미국내 주요 기업들 사이에서 유행하였던 리사이클링,
다운사이징 운동과 최근 나타나고 있는 컨트랙트아웃(다운사이징에서
한단계 발전한 과정으로서 일반 행정부문을 별도의 관리회사에 위탁, 조직을
슬림화하는 관리방식)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미국에서 벤처산업이 크게 발달할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기업설립과
사업환경이 매우 유리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민간기업의 기술개발 촉진을 지원키 위해 1958년 소기업법(Small
Business Act)을 제정한바 있는 미국 정부는 공공투자법인및 개인의
투자확대를 위한 각종 제도와 세제개편, 나스닥시장 개설 등을 통해
벤처캐피털시장을 활성화시켜왔다.

이 결과 벤처산업의 메카로 불리는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주에는
약 1조1천억달러의 벤처자금이 투자된 것으로 집계되었으며, 메사추세츠주
2천9백78억달러, 텍사스주 1천7백89억달러, 테네시주 1천6백80억달러,
그리고 뉴욕주에는 1천1백97억달러가 투자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인들이 이처럼 벤처캐피털에 투자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자금공급이 수요를 크게 초과하는 상황에서 투자자들로 하여금
어떤 투자방법보다도 고소득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일반 예금금리가 5~6% 수준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벤처캐피털의 연간
수익률은 약 12%에 달하고 있으며, 투자위험도에 따라서는 연간 수익률이
최고 16%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제살리기의 일환으로
벤처기업 설립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때보다 고조되고 있다.

20~30대의 청년층을 중심으로 벤처기업 설립붐이 일고 있으며 정부에서도
벤처산업 육성을 위한 각종 규제조치 완화와 함께 벤처기업 중심의 주식시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벤처기업은 미래지향적이며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현대판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벤처산업이 2000년대 한국의 수출
효자산업으로 태어나기를 간절히 기대하는 가운데 좌초한 태일정밀은
그래서 우리의 기대를 무색케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