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더이상의 부도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쪽으로 경제정책이 급선회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증시는 21일 모처럼만에 오름세를 보였지만 환율이 급상승하면서
발목이 잡혔다.

이날 외환시장에서 원화환율은 매매기준율을 사상 처음으로 9백20원대
위로 밀어 올렸다.

이에따라 환율 불안심리가 확산일로로 치달아 "외환시장의 첫 패닉현상"
"준외환위기"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외환딜러들은 최근 연쇄부도여파가 외환시장에 반영되면서 최근의 급등세가
나타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기아그룹에서 중견기업으로 이어지는 부도사태로 대외신인도가 하락하고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나빠진 점을 감안하면 환율 상승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달러화강세등으로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하락함에 따라 상승압력은 더욱 커졌다.

매도개입을 통한 외환당국의 환율안정 시도로 상승시점이 다소 연기됐다는
것이다.

시중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그동안 시장내에서 암묵적인 공감대를 형성한
"9백15원대"가 무너진 사실이 불안심리를 더욱 부추긴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스탠다드앤드차터드은행의 홍원재 지배인은 "외환당국이 메워온 일시적
수급공백이 갑자기 커지다 보니까 시장이 과민반응을 보인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현재 시장참가자들의 거래양상을 보면 원화가 절하될
것이라는 대전제를 깔고 있다"며 당분간 환율상승세가 이어질 공산이 큰
것으로 점치고 있다.

향후 환율동향과 관련, 은행권의 한 딜러는 "다음달초까지 9백20원에서
9백30원대"를 꼽고 "이후의 환율추세는 외국인주식투자 한도확대가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경제에 대한 외국인들의 시각, 달러화의 공급규모 등이 다음달 3일의
한도확대를 통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환율수준이 이렇게 높은 적이 없을 정도로 경험이 일천한 탓에 앞으로
환율이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는 얘기도 나온다.

대우경제연구소 한상춘 연구위원은 "시장개설이후 처음 직면한 패닉현상"
이라며 "정부가 획기적이고 가시적인 조치를 보여 주지 않는한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은 당분간 지속될 수 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경쟁국과의 환율을 고려할 때 현재 수준은 문제될게 없다는 외환당국의
입장은 시장심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시각이라고 한위원은
지적했다.

원.달러 환율이 세자리수로 움직이는데 비해 대만의 뉴타이완 달러는
두자리, 엔화도 1백엔대여서 환율인상율은 같더라도 심리적으로 주는 불안감
은 훨씬 크다는 것이다.

외환딜러들은 우리경제에 대한 위기감으로 외환시장이 휘청이는 만큼
기아사태 등에 대한 해법제시가 근본적인 치유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달러화 매도정도로는 더이상 시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갈 수
없다는 설명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