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비자금의혹 고발사건 수사를 대선이후로
유보한 것은 고도의 "정치적인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수사착수에 대한 여론이 두갈래로 갈라져 있는데다 수사를 위한 물리적인
시간도 부족하다는 상황인식에서 "유보"라는 차선의 선택이 나왔기 때문.

이는 또 15대 대선이 공명정대하게 치러지지 않을 경우 여야는 물론
"시제"를 불문, 수사에 나서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점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한켠엔 계속 칼을 품고 있겠다는 정치권에 대한 일종의 "경고"인 것이다.

김총장이 밝힌 수사 유보의 이유는 크게 3가지.

수사를 할 경우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극심한 국론분열과 <>경제회생의
어려움 그리고 <>대선전까지 마무리할 수 없는 수사기술상의 문제 등이다.

김총장은 "취임사에서 밝혔듯이 과거회고를 지양하고 미래지향적인
검찰상을 구현하기 위해 수사유보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경제회생"이란 화두를 꺼내 독자적인 결단을 내리는데 경제
현실이 크게 고려됐을거란 관측이 많다.

특히 최근들어 기업의 잇단 부도, 주식시장 침체 및 금융불안 등 국가
경제가 극도로 불안한 가운데 정치권과 경제인을 대상으로 대규모 수사가
시작될 경우 경제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점이
김총장의 "고독한 결단"의 배경이 됐다는 것.

그는 "검찰이 경제회생에 도움이 됐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까지 했다.

검찰은 이번 결정이 검찰권 중립의 한 사례라고 말하고 있다.

청와대나 신한국당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독자적으로 결정했다는 점을 애써
강조하고 있다.

김총장은 그동안 각계의 의견 수렴을 거쳐 20일 오후에 열린 전국고검장
회의후 고검장 대검차장과 집무실에서 별도회의를 거쳐 결심을 굳힌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지만 검찰이 민감한 사안에 대해 수사유보 판단을 내린 부분이나
공명선거없는 대선이 될 경우 과거 정치자금과 대선자금에 대해 수사하겠다고
밝힌점은 지나치게 여론을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총장이 "과거의 정치자금에 대해 정치권 대부분이 자유스러울 수 없다고
판단된다"면서 "이번 대선이 구태의연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고 국민
공감대가 모아질 때는 즉시 수사에 착수할 것"이라는 말한 것은 애매모호하기
그지없다.

검찰이 정치자금 수수를 알고 있으나 수사를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고
대선후 여론의 추이에 따라 수사를 하겠다는 것이어서 너무 정치적이다는
것이다.

아무튼 검찰의 수사유보와 그 배경에 대해 논란은 남을 것이지만 일단
여야의 소모성 정쟁이 중단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이를 계기로 국민 기업 정부 등 경제주체들이 경제회생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전역량을 결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남궁덕.김문권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