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문제에 대한 정부의 접근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규모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직접적인 규제를 가하는 것은 초대형다국적
기업들과 무한경쟁을 벌이는 개방화 시대에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특히 정부가 새로 추진하고 있는 그룹기조실에 대한 책임부여
방안에 대해서도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기업활동을 위축시킨다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30대계열기업군을 대규모기업집단으로 지정해 상호출자금지, 순자산
의 25% 이내로 출자총액제한, 계열회사에 대한 채무보증을 자기자본의 2백%
이내로 제한하는 등의 규제를 가함으로써 경제력집중을 억제해 왔다.

또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시중은행지분은 4% 이내로
억제하고 있으며 금융보험회사의 의결권에도 제한을 가하고 있다.

물론 정부의 대기업정책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대규모기업집단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경우 인력이나 자금조달에서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시장경쟁원리에 의한 경제적 효율성달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고 공정거래질서를 교란시킬수 있다는 것이다.

경쟁에서 패배한 비효율적인 기업을 그룹에서 지원함으로써 시장원리에
의한 구조조정을 어렵게 하며 대주주 1인의 가부장적 권위주의지배가 지속
되어 경영의 경직성이나 비효율성이 초래될수도 있다.

뿐만아니라 대주주들이 기업집단을 통해 정치사회적인 영향력을 키우고
국민정서를 악화시켜 갈등요소로 작용할수 있다는 점도 정부가 경제력집중
억제정책을 펴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최근 우성 한보 진로 기아그룹의 부도에서 볼수 있듯이 무리하게 상호지급
보증으로 연결돼 선단식경영을 벌이며 기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던 대기업
그룹들이 파국을 맞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대기업그룹의 경영행태가 수정
되어야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기업인들도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규제방식이다.

대기업에 경제력이 집중됨으로써 생기는 문제점들은 금융기법의 발전이나
금융관행의 합리화, 시장경쟁의 확대등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해결돼야할
내용이지 직접 규제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몇몇 대기업의 부실화는 기존의 정부정책이 사실상 큰 효과가
없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출자총액제한의 경우 대그룹들의 다각화를 총량적으로 총량적으로 규제하는
수단이다.

물론 기업이 하나의 분야에서 세계최고가 되는 것도 바람직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변화하고 있는 산업의 트렌드에 적응하기 위해 다각화를 추진
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른바 문어발식 확장의 폐해는 합리적인 분석이 부족한 상태에서, 또
산업전망에 대한 자신이 없어 단지 협소한 국내시장에 적응하려는 목적으로
다각화를 추진할때 나타난다.

그러나 신규사업에 대한 진출여부는 출자총액제한으로 직접 막을 것이
아니라 금융기관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시장경제적인 방법이다.

궁극적으로는 금융기관이 금융기법을 고도화시킴으로써 해결하도록 해야할
문제다.

또 기업들이 투자에 실패한 사업분야를 빨리 과감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것도 문어발식 확장의 한 요인인데 이것 또한 채권기관및 소액주주들이
감시를 강화하는 시장경제적인 문제해결방식으로 접근해야할 것이다.

재계에서는 경제력집중억제정책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대규모기업집단을
30대그룹에서 5대그룹으로 축소하자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

5대그룹과 경제력격차가 크게 벌어져 있는 6대이하그룹에 대한 규제는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당국자들은 이같은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각종 경제력집중의 부작용이
5대그룹보다 6대이하그룹에서 더욱 심각하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도 결국에는 각종 불공정거래규제강화 기업회계제도및
공시제도개선 채권금융기관및 소수주주의 감시강화 등으로 부작용을 최소화
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합리적이다.

선진국들의 초대형 다국적기업들과 국경없는 무한경쟁을 벌여야 하는
시기에 우리 스스로 족쇄를 만들어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대기업정책은
실리면에서도 시대적으로 난센스라는 것은 그래서 더욱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셈이다.

<김성택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