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제 할수밖에 없다 ]

정병기 < 공정위 기업집단과장 >

규제완화는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통해 민간의 창의와 활력을 제고
함으로써 국민경제의 효율을 증대시킨다.

그러나 규제를 완화한다고 해서 모든 규제를 일률적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즉, 공정거래제도상의 규제, 환경오염에 대한 규제, 수도권집중억제를 위한
규제 등과 같이 규제의 내용 또는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오히려 강화해야
할 규제도 있는 것이다.

기업이란 그 본질상 국민경제보다는 당해회사의 이윤극대화를 우선적으로
추구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공정한 경쟁의 회피,독점의 추구등 개별기업 입장
에서는 득이 되지만 국민경제에는 해가 되는 행위도 하게 된다.

특히 각종 진입제한이나 개별투자행위 등에 대한 규제완화에 따라 대기업들
이 우월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여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가능성은 상대적
으로 더 커지게 된다.

따라서 규제완화에 따른 공정경쟁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는 경기규칙으로서의 공정거래제도는 더욱 강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기업 현실은 주식회사의 이사.감사가 오너에 의해 사실상
임명되고 기업의 주요의사결정을 오너가 독단적, 자의적으로 하는 등 회사의
내부통제기구인 주주총회 이사회 감사가 유명무실화되어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산업도 낙후되어 대출등 여신제공시 기업의 성장가능성이나 신용보다는
담보, 계열사의 채무보증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아울러 기업의 부채가 자기자본의 수배내지 수십배에 달해 기업의 사실상
주인은 금융기관 임에도 불구하고 기업경영에 대한 감시기능은 거의 전무
하여 과도한 차입및 무분별한 사업확장의 견제에 한계가 있다.

부실경영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규제장치인 M&A 시장도 이제 형성되는
단계에 있어 아직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규제완화차원에서 경제력집중억제시책을 폐지 또는 완화
해야 한다는 것은 규제완화에 대한 이해부족에 기인한 것이며 현실적으로도
최근 우리경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