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그룹은 결국 법정관리로 결론이 났다.

이날의 결정을 위해 정부는 21일 경제장관회의와 국무회의를 방불하는
청와대 관계장관회의를 잇달아 열었고 내무부 안기부 경찰까지 참여하는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했다.

기아문제를 방치하고는 경제의 불안, 대외신인도의 하락을 막을수 없다는
절박감이 정부를 "개입"쪽으로 방향을 틀게 했다.

정부가 굳이 법정관리를 선택한 것은 현재의 화의제도로는 금융단이 기아
회생자금을 지원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화의제도는 별제권(담보있는 채권의 독자적인 채권회수권리)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채권단 사이에 갈등구조가 상존하고 결국은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게 정부의 설명이다.

화의는 처리에 긴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가 입장을 선회한 것이 단순한 법정관리제도의 상대적 유리함
때문만은 아니다.

강 부총리 스스로가 여러차례 강조했듯이 최근 수개월 동안 정부는 기업
문제에 대한 철저한 비개입주의를 견지해 왔다.

개별 기업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다거나 대마불사식 경영은 이제 끝났다는
말을 강부총리는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해 왔다.

이런 방침이 바뀐 것은 사실 이달초 쌍방울 그룹과 해태그룹의 자금난이
가속화되는 등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차입 의존도가 높은 기업이 한둘이 아닌터데 시장논리만을 주장하기에는
한꺼번에 너무도 많은 기업이 무너진다는 위기감이 결국 정부를 직접 개입
쪽으로 돌려세웠다.

특히 어떤 기업은 부도를 막아주고 어떤 기업은 시장논리냐는 정부내의
반론과 정치권의 압력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주가폭락 환율급등등 총체적인 경제위기의 급류가 형성되면서 기아는
화의로부터 법정관리라는 보트로 옮겨 타게된 것이다.

여기에는 국민회의 등 야당의 묵시적 동의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아문제를 지금 해결해 놓지 않으면 대통령 선거가 어떤 정치세력을
선택하든 간에 차기정권에 엄청난 부담을 준다는 점을 정치권도 공통적으로
인식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기아를 법정관리한다는 이날의 결정으로 기아 문제가 종료된 것은
결코 아니다.

금융시장이나 증권시장에 주는 충격은 이날의 주가폭등에서도 보듯이
일단 해소되겠지만 자동차 산업의 구조개편, 채권은행단의 부실채권 문제,
제3자 인수, 공기업화에 따른 대외적인 오해의 소지등 부작용들은 오히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져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기아 계열사를 인수하겠다는 의향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으나 이를
둘러싼 경제계의 갈등과 분쟁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또 정부가 기업문제 해법에 대한 좋지 않은 선례를 만든 이상 앞으로 다른
기업에서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정부가 운신할수 있는 여지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기아그룹 임직원들의 정서를 달래는 문제 또한 결코 적은 문제는 아니다.

기아해법은 결론이 났지만 기아문제는 아직도 진행중이라고 할수 있다.

(정규재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