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이 다시 극도로 혼미해지고 있다.

주가는 사상최대의 낙폭을 기록하며 곤두박칠쳤다.

불과 이틀전의 사상최대 상승폭이 급전직하로 뒤집어진 것이다.

환율은 정부와 한국은행의 강력한 시장개입을 간단히 무력화시키면서
9백30원선까지 밀려들고 있다.

정부와 한은은 외환보유고를 들여다보면서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만일 9백30원의 저지선이 무너지면 환율은 순식간에 9백40원대로 밀고
들어올 태세다.

당국자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정부가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기아문제에 단안을 내린지 불과 이틀만에
금융시장의 불안은 더욱 악화된 형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홍콩시장의 불안이 원인이라지만 한국경제에 내재한 모순의 폭발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악순환의 상승작용이 우려되는 국면이다.

특히 동남아를 강타한 "외환위기"의 태풍이 북상해 한반도로 상륙하는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동남아 금융위기가 동아시아 개도국 경제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한국도 바로 그런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경고가
금융시장에서 분출되고 있는 셈이다.

기업들의 과도한 차입경영, 금융의 낙후성, 정부의 통제력 약화 등이
어울어져 금융시장에 삼각파도를 때리고 있는 중이다.

실제로 도쿄의 금융가에서는 다음 차례는 한국이라는 풍문이 끈질기게
나돌았고 유럽과 미국의 투자자들이 불안하게 보는 "위기의 동남아"에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동남아시아 성장한계론은 일본의 장기불황으로 더욱 증폭됐고 이 지역의
성장전략 전반에 대한 회의를 높여 놓고 있다.

실제로 최근 2,3일간 한국외환 시장의 불안은 주식을 팔고 떠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탈출 행렬이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투자자들은 자국법에 의해 주식을 매각하면 매각대금을 한국에
남겨 놓아서는 안되게 돼있다.

주식을 팔면 파는 대로 달러가 빠져 나가고 그것이 외환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과연 그들이 한국증시로부터 기조적으로 엑소더스하는 것인가에 대한 답변
여하에 따라 위기의 단기적인 진폭을 예상할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홍콩과 사정이 크게 다르다는 정부의 설명도 물론 일리는 있다.

그러나 정부의 설명이 먹혀들기에는 시장 참가자들이 정부를 너무 믿지
못하고 있다.

이점이 위기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 정규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