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기지를 대륙으로 옮기자니 눈치가 보이고 영국에 그냥 남아있자니
앞날이 불확실하고..."

영국에 진출해 있는 미국 일본 등 다국적 대기업들이 요즘 냉가슴을 앓고
있다.

유럽통화통합(EMU) 가입여부에 대한 영국 노동당정부의 공식 입장이
"안개"속에 가려져 있어서다.

99년 1월 출범하는 EMU에 영국의 1차 가입은 현재 물건너간 상태다.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이 20일 "파운드화가 99년 시행되는 단일통화에
참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99년이후 가입시기"에 대해선 영국
정부가 여전히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영국에 진출해있는 외국대기업들은 현재 5백여개사에 달한다.

영국 제조업 생산의 4분의 1, 수출은 40%를 차지할 정도로 영국산업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언어 인건비 등 투자여건 면에서 대륙국가에 비해 훨씬 유리해 대부분
영국에 진출한 것이다.

이들 외국 대기업은 영국이 조기에 참여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요즘 파운드화 강세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단일통화 조기 참여시
에는 파운드화강세도 꺾여 수출경쟁력을 회복할수 있는데다 무엇보다
환 리스크가 없어져 환거래비용을 20~30%까지 절감할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영국정부에 조기참여를 요구할수도 없는 입장이다.

미국 GM은 지난 18일 "EMU참여를 거부할 경우 영국 현지공장을 폐쇄하겠다"
고 경고했다가 이틀만에 "없었던 일로 하자"고 말을 번복했다.

그 배경에는 영국노동당정부와 정치권으로부터 압력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 도요타도 지난봄 "영국이 EMU에 가입하지 않을 경우 현지공장을
대륙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가 곤욕을 치렀다.

이에 반해 벤츠 지멘스 등 대륙의 다국적 대기업들은 99년부터 대정부및
협력업체와의 결제통화를 마르크화에서 유러화로 바꾸기로 하는 등 단일통화
도입에 따른 준비작업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다.

영국진출 외국기업 입장에서 보면 99년이후에는 대륙기업들은 이미 "손"을
털어버린 환문제로 여전히 씨름을 해야하는데다 단일화돼가는 대륙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싸움에서 불리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됐다.

현대 삼성 LG 대우 등 영국에 생산기지를 구축한 한국기업들도 상황은
마찬가지.

한국기업들은 그동안 미국 일본기업들과 달리 인력부족 등을 이유로 EMU
도입에 따른 대응방안을 마련하지 못해왔다.

그러나 EMU가 가시화됨에 따라 기업에 미칠 영향을 최근들어 예의주시하고
있다.

영국에 있는 삼성그룹 구주본부는 "EMU 전담팀(태스크 포스)을 구성해 유럽
각국에 흩어져있는 계열사들의 회계기준 변경 업무통일화 작업 등을 위한
분석작업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총대를 메는"(생산기지를 대륙으로 옮기는) 기업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면
"투자최적지"로서의 영국의 지위는 아무래도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런던=이성구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