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천정부지의 오름세를 지속, 마침내 27일 달러당 9백40원(장중
거래환율 기준)시대를 맞이했다.

외환딜러들 표현대로라면 서울 외환시장은 지금 심리적 공항상태이다.

"시장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태국등 동남아지역 국가들이 겪는 통화위기는
없을 것"이라는 외환당국자들의 확언은 이제 식언이 됐다.

왜 이지경에 이르렀을까.

외환딜러들은 복잡한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해법도 간단치 않다는 지적이다.

지난 24일 S&P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한단계 낮춘게 가장 최근에 나타난
요인.

그동안 무역수지 적자로 생긴 외화부족분을 해외차입으로 메워온 터라
신용등급 하락은 해외차입난및 외환시장 공급물량 감소 예상으로 이어졌다.

이에따라 환율 불안심리가 더욱 기승을 부려 수요(헤지용)는 늘고 네고물량
(기업체 수출대금)은 자취를 감췄다.

환율이 밀려 올라간 건 당연한 일이다.

증시와 환시의 악순환적 연결고리는 더욱 단단해 지는 양상이다.

이날도 주가는 경제장관회의 등으로 오전 한때 오름세였지만 환율이 급등
하자 속수무책으로 고개를 꺾었다.

주식투자를 아무리 잘해봐야 환율급등으로 남는게 없다고 판단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또 매도세로 돌아선 탓이다.

시장 관계자들은 외환당국이 그동안 너무 안이한 대처로 일관, 신뢰성을
잃은 점도 큰 요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신뢰가 없으니 외환정책보다 시장의 힘을 중시하게 됐고 외부 충격에 대한
외환당국의 안전판 역할도 약해졌다.

태국 등 동남아국가 금융위기가 한국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바로
신뢰성 상실의 결과이다.

외환당국은 이날 창구지도를 통해 환율급등에 제동을 걸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시장의 볼륨만 줄였을 뿐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불안심리가 워낙 강해 창구지도 대상이 아닌 외환시장의 마이너은행(후발
은행)들이 달러화가 나오는 대로 거둬갔기 때문이다.

실제 일평균 22억달러에 달했던 거래 규모는 지난 22일 14억3천만달러, 23일
9억8천만달러, 24일 9억7천만달러로 감소일로를 걷고 있다.

볼륨이 작은 탓에 작은 규모로도 환율은 요동을 칠 수밖에 없다.

외환딜러들은 그러나 우리경제의 현주소가 환율급등의 근원적 요인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시장자율에 무책임하게 내맡겨 버린 결과가 지금의 환율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경제정책의 방향과 내용이 달라지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기 힘들다는 얘기도 나온다.

< 박기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