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장쩌민(강택민)
중국국가주석간의 미-중 정상회담은 북한 김정일의 4차회담 재개의사
표명과 거의 때를 같이 하고 있어 우리의 특별한 관심을 끈다.

미-중 정상회담은 지난 85년이래 12년만에, 89년 천안문사태 이후
처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양국의 소원한 과거를 청산하고 21세기를
맞아 건설적 동반자관계를 수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중국으로서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이 세계 최강국 대열에 합류하게
됐음을 주변국들에 알리는 동시에,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국제적 발언권
확대를 위해 적극적으로 대미 관계개선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역시 세계의 주요 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고립이 더이상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아래 새로운 미-중 협력관계를 모색할 것으로
분석된다.

역사적으로 미-중 관계가 한반도 안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아온 우리로서는 두 강대국의 관계회복을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한반도에서 미-중의 이해관계는 일치한다"는 일반적 가설을 들먹일
것도 없이 적어도 북한의 핵무장저지와 한반도의 안정유지라는 두가지
문제에서만은 두나라의 이해가 일치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현재 남북한과 미-중 4자관계에서 최대현안인 4자회담도
미-중 관계의 산물이라고 할수 있다.

정전협정 조인당사자인 양국이 그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4자회담이란
새로운 협상의 틀이 생겨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미-중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날 경우 4자회담은 상당한
추진력을 얻게될 것이 확실하다.

더욱이 백악관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반도문제의 해결과 북한의 4자회담
참석유도가 심도있게 논의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어 주목된다.

이와 관련, 최근 김정일이 4자회담 재개의사를 밝힌 것도 중국-북한간의
사전 교감에 의한 것이라는 추측마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미-중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동아시아 안보정세, 특히
한반도상황에 긍정적 효과만을 가져올 것으로 속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물론 동아시아 안보구도는 미-중 관계개선으로 미-중-일 3각체제로
전환돼 이 지역의 다자안보구도를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중 양국은 한반도문제에 대해 우리의 이해와 배치되는
비밀흥정을 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를테면 북한의 4자회담 참석을 유도하는 대신 북한의 참석에 대한
반대급부로 식량지원 등 경제난 해결을 위한 짐을 한국측에 모두 떠넘기려
할 수도 있을 것이며, "안정"을 내세워 한반도의 현상고착을 영구화하려
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대통령선거에 정신이 팔려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정부는 이처럼
중요한 정세변화를 결코 가볍게 보아넘겨서는 안된다.

앞으로 미-중-일이 벌일 아시아에서의 패권다툼을 염두에 둔 안목있는
외교력이 어느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