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본시장에 "공황"이 일어나는가.

27일 뉴욕 증시가 사상 최대 하락폭을 기록한 데 이어 28일 도쿄 홍콩 등
아시아 증권시장이 대붕락 장세를 지속했다.

"심리적 공황"이 이미 전세계적으로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게 분명해졌다.

미국과 아시아 뿐 아니다.

남미 최대국가인 브라질 증시는 27일 하루새 14%나 주가가 빠지는 최악의
장세를 연출했다.

유럽 주요 증시에서도 투자자들의 "철수"소리가 요란해졌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주가의 동반 폭락 현상은 단순한
"도미노 현상"만으로 설명하기에 부족할 정도다.

지난주 홍콩에서 시작된 주가 대폭락이 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번지고,
"철옹성"으로 여겨졌던 미국을 덮친 데 이어 다시 아시아 시장이 그 충격을
돌려받고 있다.

종착역을 모르는 "핑퐁식 도미노"라는 신조어라도 동원해야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해진다.

국제 금융전문가들은 이번 세계 증시 대폭락 파장의 행로를 크게 두
갈래로 가늠하고 있다.

하나는 미국 증시의 향후 행보다.

다른 하나는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동남아 경제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걷느냐는 문제다.

당장의 관심사는 세계 증시의 "잣대"역할을 해 온 뉴욕 주식시장이다.

사실 뉴욕 증시만으로 국한해서 보면 충격파는 의외로 짧게 매듭지어질
공산이 크다.

우선 이번 사태를 결정적으로 증폭시킨 뉴욕 주가대폭락이 10년전의
"1차 블랙 먼데이"때와는 여러모로 사정을 달리하고 있다.

주가 시세의 주요 잣대인 금리가 당시보다 4% 포인트 이상 낮은 수준에서
안정돼 있다.

뉴욕증시는 특히 미국기업들의 경쟁력이 그 어느때보다도 강화되는 등
실물경제의 탄탄한 뒷받침을 받고 있다.

실업률은 완전고용 수준인 4%대에서 안정돼 있고, 무역수지도 크게 호전돼
있는 상태다.

80년대 미국을 골치아프게 했던 또다른 주범 재정적자도 지난 9월말로
끝난 97회계연도중 2백26억달러로 20년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마디로 "집안 사정"만을 놓고 보면 미국 증시가 더 이상 고꾸라질
이유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뉴욕 주가가 한 호흡을 고르고 안정을 되찾는다면 다른 증시들도 더
이상의 충격파를 벗어나게끔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 증시가 더 큰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냐 여부의 결정적인
관건은 애초의 원인제공자인 아시아쪽으로 돌려진다.

이 대목에 이르면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만다.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홍콩 등 관련돼 있는 나라들이 경제
위기에 이르게 된 배경이 저마다 다르고, 그에 따라 처방도 달라질 수 밖에
없어서다.

태국의 경우는 방만한 통화관리와 지나친 설비 과잉이, 말레이시아는 외국
환투기꾼들의 공략이 직접적인 통화-증권 위기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반면 인도네시아는 관료제도의 비능률과 부패가 주요인으로 꼽힌다.

홍콩은 중국체제에 편입되는 과도기에 있다는 불안감이 작동하고 있다.

여기에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것으로 보였던 한국과 대만까지 산업구조
조정의 태풍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이런 각양각색의 요인들이 얽히고 설켜 외환-증권 위기가 초래되고 있는
탓에 그 여진이 얼마나 진정될 수 있을 것인지 속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아시아 경제가 빨리 제자리를 되찾지 못할 경우 그
불똥은 아시아만이 아니라 미국-유럽-중남미로 또다시 번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진행돼 온 "국경없는 경제(borderless economy)의 세계적 통합
작업에 의해 각국 경제는 서로 긴밀하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의 세계적 증권시장 위기가 어떤 결말을 보일지 선뜻 답을 내릴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