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블랙 먼데이"의 3일전인 87년 10월 16일.

연일 상승국면을 달리던 뉴욕 주가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100포인트가 넘는
폭락세를 기록했다.

이날의 주가 대폭락을 두고 당시 세계 증권가에서는 "29년 10월의 블랙
프라이데이가 재현되는가"라는 우려섞인 반응을 내놨다.

우려는 정확히 3일뒤인 19일 뉴욕 주가지수는 무려 508.82포인트나
한꺼번에 빠지며 이른바 "암흑의 월요일"을 연출했다.

이날 뉴욕 주가 폭락은 즉각 도쿄 런던 홍콩등 세계 주요 증권시장을
일제히 뒤흔들었다.

이튿날 도쿄 주가는 하루만에 무려 620포인트가 하락, 사상 최고 폭락세를
보였고 런던시장과 홍콩시장에서도 주가가 전례없이 폭락, 런던주가는
136.9포인트, 홍콩 항셍지수는 420.8포인트씩 각각 하락세를 나타냈다.

한국도 예외없이 20일 하룻동안 12포인트 하락한데 이어 계속 폭락장세를
보였다.

세계 주요 증권시장의 하루 하락폭으로는 30년대 대공황기를 훨씬 능가한
셈이었다.

당시 언론들은 이날 세계 증시의 동반 폭락을 두고 "제2의 대공황" "증시
대학살" "아마겟돈(세계종말에 있을 선과 악의 결전장)" 등 갖가지 제목을
갖다 붙였다.

동시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이날 충격파에 대해 "대공황의 신호탄이냐"
"일시적 동요냐", 또는 "만약 회복된다면 언제 어느 선에서 회복될 것인가"
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당시 블랙 먼데이의 충격은 어느시점까지 계속됐을까.

예상과 달리 블랙 먼데이는 불과 이틀만에 급반등으로 역전됐다.

21일 뉴욕 주가지수가 반등폭으로는 사상 최고치인 102.27포인트 상승한데
이어 이튿날 도쿄 시드니등 주요국 증시도 폭락의 충격에서 벗어나며
급반등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반등효과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다시 폭락세로 돌아선 이후 세계 주가는 계속 등락현상
을 반복했다.

이처럼 폭락과 폭등이 순환되는 널뛰기 장세는 이듬해 초까지 계속됐다.

그러다 점차 회복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시점은 88년 3월말~4월초부터.

달러화의 꾸준한 강세에 힘입어 뉴욕 주가지수는 3월말을 기점으로 상승세
로 돌아서 4월초 블랙 먼데이 이후로는 처음으로 2천1백선을 돌파했다.

도쿄 주가지수도 외환시장의 안정에 따라 4월초 2만6천6백선을 기록, 87년
주가 대폭락 이전 수준으로 복귀했다.

<정종태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