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라하는 대기업그룹 계열사인 A사는 요즘 기업공개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당 순자산이 주식액면가의 3배를 넘어야 한다"는 기업공개요건에 미달
됐다는 소식을 들은 탓이다.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A사의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됐다.

경쟁업체는 지난해 유상증자로 자금을 조달, 신나게 일을 벌이고 있는데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빌려 메워야 하는 처지를 생각하니 더욱 답답해
졌다.

그나마 은행대출이나 지급보증을 받기도 갈수록 어려워졌다고 회사
관계자들은 울상이다.

이처럼 기업공개를 하고싶어도 공개요건에 맞지 않아 좌절하는 회사가
적지 않다.

기업수익이 나쁘거나 재무구조가 취약해서가 아니라 단지 주당순자산이
1만5천원을 넘지 못한다는 이유로 "공개불허" 판정을 받은 회사는
대기업그룹에도 널려 있다.

A사 관계자는 "회사재무구조를 우량하게 만들려면 자본금을 늘리는게 가장
바람직한 방법인데도 기업공개요건이 오히려 자본금을 줄일 것을 강요하고
있다"며 "기업공개를 위해서는 갑자기 순이익이 급증하거나 감자를 해야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정보통신분야의 중소기업인 B사는 배당금요건규정 때문에 유상증자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

3년평균 주당배당금이 3백원(대기업 4백원)을 넘어야 한다는 기준을 맞추지
못해 올해 유상증자를 포기했다.

사업이 성장기로 접어들면서 순이익을 모두 재투자하다 보니 투자자들에게
배당금을 넉넉하게 주지 못한 때문이다.

이 회사 재무담당이사는 "매출과 이익이 급증하고 주가도 많이 올라
투자자들의 실익은 오히려 커졌는데도 유상증자를 할수 없다는게 말이
되느냐"며 "순이익을 투자재원으로 삼아 기업이 성장하는 것이 결국
투자자들에게 보답하는 것인데도 우리나라에서는 배당금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물론 자본시장에서의 기업규제가 예전보다 훨씬 줄었든 것은 사실이다.

올해들어 회사채물량조정이 없어졌다든가, 배당성향요건이 폐지된 것은
기업들로부터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공개요건만 갖추면 언제든지 주식시장에 상장할수 있게된 것도 커다란
진전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주당순자산액 하한선을 설정하고 유상증자요건을 단순히 배당금
으로만 따진다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논리라는 지적이 많다.

투자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할수 있지만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게 기업들의 얘기다.

<현승윤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