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이 없는 국가를 상상해보자.

그런 나라를 통치하는 왕은 상당히 편할 것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즉흥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법률없는 나라가 잘 될 턱이 없을 것이다.

회사도 그렇다.

창업초기부터 사규를 제대로 만들어놓지 않으면 잘될 턱이 없다.

끊임없이 혼선을 빚게 된다.

사규 가운데서도 특히 회계에 관한 규정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회사는
얼마가지 않아 흔들리게 된다.

바로 회계규정이 없는 기업은 "밑빠진 독"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계규정이란 단순히 돈이 옆으로 새나가는 걸 막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경영을 보다 효율적으로 추진키 위한 것이다.

회계규정은 보통 계정과목 재무회계 자금관리 재고자산 고정자산 업무회계
종합결산 감사 등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소규모기업의 경우 이런 사항을 모두 규정해놓을 필요는 없다.

다만 재무 자금 업무 감사 등에 관한 규정만 명백히 하면 된다.

먼저 재무규정을 보자.

재무회계에선 금전출납에 관해 명확히 설정을 해야 한다.

일단 금전의 범위를 정하고 출납책임자를 임명해야 한다.

여기서 금전이란 현금 수표는 물론 어음 우편환 대체예금증서도 금전으로
봐야 한다.

현금의 출납은 출납담당자를 통해서만 지급돼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담당책임자의 날인없이 현금을 지급하지 못하도록
규정하자.

수납에 관한 규정도 꼭 정해놔야 한다.

현금수납은 꼭 입금통지서 등 증명서류와 함께 수납한다.

어음을 받았을 땐 당일중 꼭 거래은행에 확인해야 한다.

출납책임자에게 이의 수령을 통보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규모가 큰 어음은 영업당당자가 자기 마음대로 수령해선 안된다.

할인가능한 어음인지를 협의한 뒤에 어음을 받아야 한다.

출납책임자는 매일 출납시간이 끝나면 현금잔액을 장부와 확인해
일치되도록 해야 한다.

매월말엔 예금잔액과 은행장부를 확인해야 한다.

중소기업 사장들 가운데는 이를 자주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예금잔액과 통장을 직접 확인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재고자산회계에선 구매방법과 구매가격 등을 정하는 방법에 대해 규정해야
한다.

구입원가 운임 수수료 하역비 등을 효율적으로 계산토록 정한다.

출고 및 폐품처분 반납 등을 할 때도 서류없이 처분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매월말 사장이 직접 재고조사를 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서류상 재고와 창고의 재고분이 틀릴 때가 많다는 점을 명심하자.

고정자산회계에선 당연히 감가상각규정을 넣어야 한다.

감가상각을 엄격히 실행하지 않다가 실패한 기업들이 예상외로 많다는
점을 알아두자.

감가상각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장부상엔 이익이 난 걸로 나타나지만
다음번 설비투자를 할때 쯤엔 "거지"가 돼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땐 이미 늦어버린다.

업무회계에선 어느선까지 외상으로 판매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정한다.

외상금을 떼었을 땐 사장의 승인없인 절대 대손처리를 할 수 없게 해야
한다.

기업은 어쨌든 밑빠진 독과 같다.

어느쪽으로든 돈이 새나가기 때문.

다만 돈이 덜 새나가도록 하는 것만이 상책이다.

이를 위해선 오늘부터 회계규정을 실천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치구 <중소기업 전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