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학은 캠퍼스가 참 아름답다.

키큰 나무숲사이로 어우러진 적별돌 건물들.

잔디위를 걸어가면 다람쥐들이 졸졸 따라온다.

다람쥐가 사람을 자꾸 따라오는 건 이곳에서 처음봤다.

이 대학 경영학과엔 캠퍼스와 잘 어울리는 온화한 인상을 가진 교수가
한사람 있다.

칼 베스퍼.

그는 창업가정신(Entrepreneurship) 분야에서 유명한 학자이다.

이 교수와 두시간여동안 얘기를 나눈일이 있다.

그는 창업가정신이란 "진취적인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얘기를 끝내면서 그는 한국엔 진취적인 기업인들이 많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이 가장 진취적인 기업인이라고
평가했다.

국내에서는 어윤배 숭실대총장이 창업가정신 분야에서 대가로 꼽힌다.

그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중소기업대학원을 설립한 인물.

몇년전 어총장이 중소기업대학원장을 맡던 때 중소기업국제회의(ISBC)에
참석하기 위해 2주일간 남미지역을 함께 여행을 한적이 있다.

당시 국제회의 참석자들은 어총장을 정말 세계적인 석학으로 받들어줬다.

그럼에도 그는 절대 권위적이지 않고 진취적으로 새로운 사업을 제안하곤
했다.

진취적인 사람은 역시 진취적인 인물을 알아보는 것인가.

어총장은 최근 "정주영 창업론"을 대학 교양강좌로 채택했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영학은 케이스스터디에 약한 편이다.

미국의 와튼스쿨이나 노스웨스턴대 켈록스쿨등 명문 경영대학원에선
마쓰시다 빌게이츠등 창업기업인들을 연구하고 가르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살아있는 기업인을 대학강좌에 끌어들인 경우는
아직까지 없었다.

숭실대가 처음으로 과감히 이를 개설한 것이다.

숭실대는 이번에 작업복차림으로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정회장의 사진등을
담은 "정주영창업 사진전"도 열었다.

부두노동자 건설잡부 제과공장견습공 쌀도매상배달원등을 거쳐 22세에
경일상회란 쌀도매상을 창업한 정회장.

지난 40년 아도서비스란 자동차수리점을 만들었고 47년엔 현대토건이란
건설회사를 창업한 정회장.

그는 동남아 건설친출, 시멘트공장설립, 현대자동차 창립, 중동진출,
중화학 선도등으로 우리나라 산업화를 이끌어왔다.

드디어 현대그룹을 초고집적 반도체, 인공지능 컴퓨터, 첨단신소재,
우주항공분야등에서 까지 전세계를 누비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이런 정회장의 진취적 정신을 대학에서 연구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떤
과제를 경영 분야에서 다뤄야 할까.

요즘 숭실대에서 열리는 정주영창업론은 학생들 뿐 아니라 최고경영자
과정을 다니는 기업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어릴 때 건설인부로 돌을 날라 지은 고려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정회장의 창업가정신을 본받기 위해서 일 것이다.

숭실대의 이런 진취적인 태도는 또다른 사업을 추진하게 만들었다.

중소기업대학원을 다닌 기업인들이 힘을 합쳐 대학안에 "중소기업
센터"를 짓기로 한것.

대학안에 중소기업회관이 지어지는 것도 세계에서 처음있는 일.

이미 20억원의 자금이 마련돼 지난 29일 상도동 캠퍼스에서 기공식을
가졌다.

숭실대 캠퍼스가 시애틀의 워싱턴대학 캠퍼스보다 겉보기엔 덜 아름다울지
모르나 훨씬 더 진취적인 것 만큼은 분명하다.

<중소기업 전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