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교육원은 고용문제 권위자인 영국 런던경제대학 로널드 도어
석좌교수를 초청, 29일 오전 한국경제신문사 후원아래 서울 호텔롯데에서
"노동시장 유연화-선진국의 경험과 시사점"이라는 조찬강연회를 가졌다.

이에 앞서 28일 저녁 노동연구원 박훤구 원장이 도어교수를 만나 똑같은
주제로 대담했다.

대담내용을 요약한다.

< 편집자 >

=======================================================================

<>박훤구 원장 =최근 노동시장 유연화에 관해 세계적으로 논쟁이 일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 도어교수를 모시고 노동시장 전문화와 관련, 선진국들의
경험을 얘기하게 돼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선 일본의 고용시스템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로널드 도어 교수 =일본의 고용제도가 변하는 데는 몇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먼저 미국식 고용제도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점을 꼽을수 있겠지요.

80년대 후반에는 각국이 일본식 고용제도가 우월하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미국 기업들의 경쟁력은 회복되는 반면 일본 경제는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미국식 고용관행과 자유방임주의적 경제운용의 틀이 우월하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일본 기업들은 스톡옵션제와 같은 미국식 고용제도의 장점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일본 고용체계를 지탱해 왔던 기업 지배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점입니다.

종래 일본 기업의 주주들은 기업간 상호출자방식의 소유구조 때문에 이렇다
할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지요.

그러나 헤이세이(평성) 불황을 거치면서 주주들의 이익을 중시하기 시작
했습니다.

특히 고령화 추세로 생명보험회사들의 수익성이 나빠지면서 보험사들은
기업에 대한 출자에 신중해졌습니다.

끝으로 연공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차별적 보상원칙이 중요해졌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일본의 연공주의는 근속연수와 기여도를 함께 고려하는 제도인데 최근에는
기여도를 보다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박원장 =일본의 경우 기업간 교차주식소유제도 때문에 기존 고용관행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자본시장구조가 바뀌면 고용관행도 상당히 변할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하지만 일본식 고용관행이 송두리째 붕괴하고 있다고 판단하기엔 이르다고
봅니다.

지난 90년 헤이세이 불황기에도 일본 기업들은 기업내 고용조정을 통해
해고를 회피하려고 노력했으며 이를 통해 실업률을 3%대로 묶고 사회적
안정을 기했습니다.

이런 관행을 교수께서 "유연한 경직성"이라고 지적하신 적이 있습니다.

<>도어교수 =불경기에 미국기업들은 인력감축으로 대처한 반면 일본
기업들은 사업다각화를 통해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잉여인력을 활용했습니다.

신소재 컴퓨터 부문에 뛰어든 신일본제철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일본 기업들이 모두 다각화에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종업원을 내쫓지 않고 사내에 보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성공적
이었습니다.

최근 일본의 고용관행이 바뀌고 있다는 것은 일본식 제도에 약간의 조정이
이뤄졌다는 의미입니다.

앞으로도 상당기간 이런 제도는 붕괴되지 않을 것입니다.

<>박원장 =다각화는 상당한 정도의 사내유보금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도어교수 =그렇습니다.

일본 기업들은 장기적으로 사내유보를 해왔습니다.

이것이 기업내 고용조정의 하나이고 출향제도,즉 계열사와 관련사로 전환
배치시키는 것이 다른 방식입니다.

물론 관련 중소기업으로 내려가면 임금수준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모기업에서 임금차이를 보전해줌으로써 출향에 따른 고충을 줄여
주는 것이 일반적 관행입니다.

<>박원장 =도덕적으로 해고와 같은 외적 유연화보다 기업내적 유연화가
사회안정에 기여하지요.

그러나 내적 유연성 또는 기능적 유연성을 확보하려면 노동시장의 제도적
기반과 노사간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기업이 곤경에 처했을 때 노조가 임금 유연화에 협조했지요.

<>도어교수 =그렇습니다.

불황기에는 노조가 임금요구를 자제했습니다.

지난 5년동안 임금인상은 매우 완만했습니다.

춘투를 통한 임금 공동교섭 관행도 기업별 특수성을 감안하는 형태로
유연해졌습니다.

<>박원장 =특히 일본에서는 상여금이 경영성과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도어교수 =일본에서 기업내 유연화가 가능한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모든 직종에서 기업별 노조체제가 구축되어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지요.

경영진도 예전에 노동조합을 거쳤기 때문에 공동체의식이 강합니다.

또 일본에서는 기업 내부의 배치전환을 수용했습니다.

물론 노사간에 암묵적인 종신고용 약속이 훈련 및 재훈련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박원장 =이른바 영.미식 자본주의 운영방식에 관해서도 얘기하고 싶군요.

요즘 한국에서는 이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의 거시경제지표가 크게 개선되고 있으나 영.미식 모델에서는
소득불평등 심화와 같은 문제점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에대한 견해를 말씀해 주시지요.

<>도어교수 =이 문제에 대해서는 두가지 판단기준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어느것이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데 유리한가 따져보는 것입니다.

아직 해답이 내려지진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주기적으로 변한다는 점입니다.

80년대에는 독일과 일본식 자본주의 운영방식이 득세했지만 지금은 미국식
이 다시 각광받고 있습니다.

또다른 판단기준은 독일과 일본에서 중시해온 소득 복지의 분배문제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가치판단의 문제입니다.

저는 경제적 효율성 못지 않게 사회적 평등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박원장 =미국이나 영국에 비해 유럽 대륙국들은 10% 이상의 높은 실업률
과 장기실업으로 고전하고 있고 고용제도의 경직성이 그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어교수 =유럽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몇가지 측면에서 거론될수 있습니다.

첫째 국가복지제도에 따라 실업자에게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되며 이로인해
실업자들의 기대임금수준이 높게 유지되고 고실업이 지속되는 것이지요.

영국 미국은 국가복지제도를 고침으로써 실업률을 낮추는데 상당한 효과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임금불평등도가 높아지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이 문제 치유방안의 하나로 네거티브 소득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요.

둘째 상당수 유럽국가들에서는 채용과 해고의 유연성이 크게 제약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산업별 교섭체제로 인해 임금결정방식이 경직돼 기업의 성과가 임금에
반영되지 않는 점도 문제입니다.

그러나 많은 나라에서 산업별 교섭체제가 분권화하고 있어 기업의 성과를
반영하는 체제로 변해가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럽의 고실업문제와 관련, 생각해야 할 점은 고용증대 못지않게 평등을
실현하고 실업자 저숙련 저임금층을 사회가 보호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미국식 모델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미국의 저소득층은 여전히 불평등을 감수하고 있으며 실업률이 5%대에
머물고 있다고 하지만 50년대의 2%대보다 낮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박원장 =프랑스는 최근 주당 근로시간을 35시간으로 단축함으로써
실업자를 줄이려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어교수 =이탈리아에서도 노조측은 예전부터 이런 방식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경제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임금수준을 유지하면서 근로시간만
단축한다는 것은 기업에 너무 과도한 부담을 주게 되어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프랑스가 1936년 주당 40시간의 근로제도를 도입했을 때도 고용창출효과는
미미했습니다.

<>박원장 =이제 노동운동에 대한 교수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아시아의 네마리 용" 가운데 한국은 유난히 이념적 투쟁적인 노동운동과
대립적 노사관계를 보였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고 전망이 어떻다고 보시는지요.

<>도어교수 =한국에서는 학생운동도 그랬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40년대 후반에서 50년대에 걸쳐 일본에서도 그랬고 70년대에는 영국에서도
그랬습니다.

일본의 경우 이같은 이념투쟁을 겪고난뒤 기업의 장기발전을 전제로 노동
운동을 전개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이념적인 투쟁적인 과정을 거쳐 노사가 상호신뢰하고 타협하는
노사관계에 도달한다면 노조를 적극 기피하는 영.미식 노사관계보다 효율과
형평을 동시에 추구하는 관행이 정착될 것입니다.

<>박원장 =20세기는 "노동운동의 황금기"로 불립니다.

그러나 21세기를 앞둔 지금 노동운동은 큰 시련에 직면했습니다.

피터 드러커는 현재 일본의 노동운동방식이 21세기에 대표적 추세로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21세기에는 노동운동이 어떻게 달라질 것으로 보십니까.

<>도어교수 =20세기 중반까지는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대체하려는 노동
운동의 이념적 목표가 뚜렷했으나 지금은 계급투쟁이라기보다 근로자 이익을
대변하는 형태로 변했습니다.

21세기에는 산업부문 근로자와 경영자는 다같이 금융시장으로부터 압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노동운동의 방향을 결정할 것입니다.

<>박원장 =마지막으로 노동과 교육간의 관계에 관해 얘기하고 싶습니다.

한국에서는 최근 교육에 대한 과잉투자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특히 80년대이후 대학교육을 대폭 확대한 결과 노동시장에서 수요공급이
맞지 않아 문제입니다.

교수께선 오래전에 학력주의의 병폐를 지적한 바 있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도어교수 =고등교육 인구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중소기업에서는 인력이
부족하고 대기업에서는 일자리가 모자라는 노동시장의 수급불균형이 심화
됩니다.

일자리를 보장받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대학 교육은 무의미합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대학진학의 매력이 시장기능에 의해 조정될 것으로
봅니다.

대학입학제도가 개방된 일부 유럽국가에서는 30%가량의 청년이 대학에
진학하지만 엄격한 졸업정원제도로 인해 실제 졸업하는 인원은 입학인원보다
훨씬 적습니다.

한국도 이런 제도를 검토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또한 대학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 대학간 격차를 축소하는 것도 입시경쟁을
완화하는 방편이 될 것입니다.

<>박원장 =이번 대담을 통해 외국의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변화의 실체를 한국인들이 이해할수 있도록 실마리를 제시해 준데
감사드립니다.

<정리=김광현 기자>

-----------------------------------------------------------------------

< 로날드 도어 교수 약력 >

-1929년 영국 태생
-1947년 일문학 박사학위 취득(런던대)
-영국학술원 미국문학과학학술원 일본학술원 회원
-현재 영국 런던경제대학 경제연구소장
-주요저서: "영국의 공장 일본의 공장"(73년), "학벌주의의 병폐",
"유연한 경직성-일본의 구조조정"(76년), "일본의 자본주의,
영미의 자본주의"(92년) 등

< 박훤구 원장 약력 >

-47년 서울 태생
-경기고, 서울대 수학과, 미국 미네소타대학원 경제학과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과 전임강사,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대통령비서실 노동비서관
-주요저서: "춘투의 구조와 특징"(91년), "단체교섭과 임금조정"(90년),
"한국의 사회교육"(86년), "농촌소득 증대방안 연구"(83년)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