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준 <금성출판사 회장>

미국 유명한 대학, 인기 있는 40대 초반의 영문과 교수가 어느날 갑자기
해고된다.

극심한 불황기, 영문과 정년 보장 교수의 정원이 찼다는 이유였다.

물론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자신처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더 좋은 일자리를 찾을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므로.

현실은 냉정했다.

그는 2년 반 동안 1백1개 대학에 지원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모두 거절뿐.

절망의 나날이 계속되고 그는 아무 일에도 적응하지 못한다.

자신을 내팽개친 사회에 대한 분노가 쌓이기 시작했고 억울함이
가족들에게 짜증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가족들의 움직이는 낮에는 자고 밤에는 돌아다니는 생활을 하기도 하고
좀더 잠을 자기 위해 수면제를 먹다가 자살을 시도한 환자처럼 병원에
실려가기도 한다.

심지어 최소한의 생활비마저 떨어지기 시작하자 아내 뱃속의 다섯째
아이까지 태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입양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는 평생 노동자였던 아버지와 장인의 삶을 경멸했고 자신은 그들보다
훨씬 뛰어난 존재이며 출세하여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다.

그것은 유명대학의 교수 자리였다.

그러나 어느날 찾아온 절벽과도 같은 해고의 고통이 그로 하여금 가족을
돌아볼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한다.

일할 수 있다는 행복과 가족간의 사랑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노동하는 삶의 숭고한 아름다움도 발견한다.

그리고 추운겨울 페인트공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30년동안 한 기업을 경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요즘 젊은이들은 직업관도 예전과 많이 다르다는 얘기를 하지만 자신의
일을 출세나 명예의 도구가 아닌 삶의 한 방법으로 묵묵히 일했던 사람들의
성공을 본다.

교수에서 페인트공이 된 "절벽산책"의 작가 돈 슈나이더는 지금도 페인트
공으로 살아가며 목수의 꿈을 키우고 있다고 한다.

감동으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아름다운 책이다.

묵묵히 그를 지켜보는 그의 아내가 지금 우리들의 가장에게도 필요한
시기다.

진정한 노동의 가치와 가족의 사랑만큼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있을까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