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훈 <한화경제연구원 국내경제팀장>

최근 우리경제는 대기업들의 연쇄부도, 주가폭락, 환율급등 등으로 인해
엄청난 어려움과 혼란을 겪고있다.

이같은 경제적 혼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연초부터 계속된 대기업들의
연쇄부도와 그에 대한 적절한 사후처리가 이루어지지 못한데 있다.

여기에 정부의 적절치 못한 대응과 동남아 통화위기가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정책당국이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이나 증시부양책
등으로 대처해서는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데 실패할 것이다.

이런 조치들은 마치 감기환자에게 감기약 대신 진통제를 주는 격이어서
나중에 국민경제적으로 더 큰 부작용을 야기할 우려가 크다.

이 시점에서는 그동안 쓰러진 대기업들의 사후처리를 신속하게 진행하는
일이 무엇보다 급선무이다.

채권단과 정책당국은 부도로 쓰러진 기업들중 회생가능한 기업들은 제3자
인수나 자금지원 등을 통해 정상적인 경영이 이루어 지도록 해야한다.

이런 과정이 신속하게 진행될 경우 국내 금융기관들의 부실여신은 크게
줄어들게 되어 해당 금융기관의 경영정상화와 대외적인 신인도 회복에
큰 도움이 될것이다.

부실기업들의 사후 처리는 가급적 시장 기능이 존중되는 방향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관점에서볼때 기아사태의 처리방안으로 제시된 공기업화 방안은
문제해결책으로 적절하지않다.

그 이유는 두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공기업은 대체로 민간기업에 비해 비효율적으로 경영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공기업화된 부실기업이 그 이전보다 효율적으로 경영된다는
보장이 없다.

또 일단 공기업화되고 난뒤에는 경영권을 둘러싸고 새로운 이해관계가
형성되어 민영기업으로 전환되기가 쉽지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가 기아자동차를 공기업화하려는 것은 여론과
향후 대선을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로 해석된다.

따라서 일정기간이후에 제3자 인수를 통해 기아차의 경영권을 민간기업으로
넘길바에는 지금하는것이 여러모로 효율적이다.

제3자 인수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치들이 필요하다.

첫째 부실기업들의 제3자 인수를 저해하는 각종 규제는 대폭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

자기자본의 25%이상을 다른 회사에 출자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출자총액제한이 그중의 하나다.

부도로 쓰러진 기업들을 인수할수 있는 여력을 가진 기업들은 상위
재벌들뿐인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재벌그룹들은 출자총액제한에 묶여 있어 새로운 기업의
인수나 합병을 할수있는 여력이 크지 않다.

또 다른 회사의 주식을 25%이상 소유하고자 하는 기업에 해당 기업주식의
50%+1주까지 공개매수토록 의무화하고 있는 의무공개매수제도도 제3자
인수를 저해하고 있다.

인수기업이 대상기업의 주식을 적어도 25%이상 추가적으로 공개매수하는
과정에서 주가상승 등으로 인해 엄청난 자금부담을 지게 되기때문이다.

둘째 국내 M&A(기업매수합병)시장을 외국기업들에 대폭 개방해
매물기업에 대한 수요기반을 넓혀줄 필요가 있다.

상품과 서비스 시장이 갈수록 대외적으로 개방되고 있는 마당에 국내기업의
소유권이 외국기업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막을 실익이 별로 없기때문이다.

오히려 현 시점은 외국기업들을 적극적으로 국내로 유치하여 이들로 하여금
생산과 수출의 일부를 담당케 하는 것이 고용창출이나 국제수지개선에
도움을 줄것으로 본다.

또 멀지않아 OECD내에서 다자간 투자협정(MAI)이 타결될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M&A시장의 대외 개방폭을 확대시켜야 하는 이유가 된다.

셋째 부실채권 정리기금등을 조속한 시일내에 가동시켜 부실기업들이
내놓은 부동산이나 채권들을 인수해주는 것도 대기업들의 추가도산을 막는데
도움이 될것으로 본다.

기업들은 사업구조조정을 위해 보유부동산을 대거 매물로 내놓고 있다.

그러나 경기불황 금융불안 등으로 부동산수요가 위축되어 있어 내놓은
부동산들이 팔리지 않아 기업들의 사업구조조정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기업들이 사업구조조정을 위해 부동산을 매각할 경우 관련
조세부담을 완화시켜 주는 조치도 필요하다.

부실 대기업들의 신속한 사후처리와 병행하여 다음과 같은 조치들도
필요하다.

통화당국은 당분간 통화를 충분하게 공급해 기업들의 자금난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

외환당국은 환율상승을 무조건 억누르기 보다는 시장수급사정에 따라
환율결정이 이루어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부 불법적인 환투기를 단속함으로써 외환시장내 달러 가수요 현상을
진정시켜줄 필요도 있다.

기업들도 한계사업의 정리, 불요불급한 부동산의 매각 등을 통한 과감한
구조조정을 실시해 경쟁력을 높여 나가야 하겠다.

근로자들도 당분간 임금인상투쟁을 지양하고 열심히 일하는 풍토를
조성해 나가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