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말리는 일은 "잘 해야 본전"이다.

자칫 잘못했다간 당사자들로부터 볼기를 얻어맞기 십상이다.

그러나 중앙노동위원회 조성준(43) 심사관은 다르다.

싸움을 말리고 돌아서는 그의 등뒤엔 늘 "고맙다"는 말이 따른다.

그것도 어느 한쪽이 아니라 양쪽으로부터다.

그가 말리는 싸움은 노사간의 분쟁이다.

단풍이 한창인 지난 일요일.

조씨는 나들이 가고픈 유혹을 뿌리치고 종일 집에 대기했다.

S사의 노사갈등이 파업으로 번지느냐 마느냐 결정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조정 시한일을 하루 앞둔 일요일의 교섭은 오전 10시에 시작돼 밤으로
이어졌다.

조심사관은 수시로 교섭 상황을 점검했다.

교섭은 철야로 진행돼 다음날 아침 6시에 타결됐다.

조심사관에게는 "고맙다"는 전화가 빗발쳤다.

S사는 지난해 정부로부터 산업평화대상을 받은 무분규사업장.

이런 회사가 파업 위기에 몰린 것은 최고경영자의 오만 때문이었다.

사장은 신임 노조위원장의 면담 요청을 "격이 맞지 않는다"며 거절했고
교섭장에는 공장장을 대리인으로 내보냈다.

이에 노조는 "사장의 못된 버릇을 고쳐놓겠다"며 파업 돌입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조심사관은 조정 신청을 접수한뒤 곧장 노사갈등의 원인부터 파악했다.

예상대로 사측은 노조와 대화할 생각은 않고 조심사관을 구슬리려 했다.

노조간부들은 이미 파업을 작심한 터라 조사에도 응하지 않았다.

전국심사관교육차 수안보에 내려간 지난 20일.

조씨는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어 3천원짜리 공중전화카드 석장을 산뒤
노조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위원장은 "한번 만나자"는 조심사관의 요청을 단호히 거절했다.

파업이 불가피하므로 만날 필요가 없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조심사관은 포기하지 않았다.

두 사람간의 전화통화는 한시간이상 계속됐다.

세번째 전화카드마저 떨어질 무렵 조심사관은 마침내 "만나겠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다음날 조심사관은 노조위원장을 만났다.

위원장은 노동위원회의 공정성을 철저하게 불신하고 있었다.

사용자측을 편든다는 얘기였다.

조심사관의 설득은 3시간동안 계속됐다.

마침내 위원장은 "파업을 자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때부터 조심사관은 회사측을 채근했다.

사장이 직접 교섭장에 나서기 어렵다면 공장장에게 교섭 전권을
위임하라고 설득했다.

회사측은 결국 이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일요일 철야교섭이 열렸고 파업을 모면했다.

S사의 경우는 조심사관이 성사시킨 16건의 조정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세방전지 조광페인트 한국피자헛 연세대의료원 등은 그의 조정에 힘입어
노사분규를 피했다.

특히 지난 5월 조심사관이 성사시킨 대한방직협회 임금협상 조정은
중앙노동위원회를 거듭나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조심사관은 지난 80년 노동부에 들어온뒤 주로 근로감독관으로 근무했다.

그가 조정의 귀재중 통하게 된 것은 일단 일을 맡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
지는 근성과 공정한 업무 처리자세때문이다(배낙기 중노위 위원장).

조심사관은 "노사갈등은 대개 사소한 문제에서 비롯된다"며 "감정의
매듭을 풀어주는 일이 조정업무의 핵심"이라고 귀띔했다.

< 김광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