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속의 물가상승을 뜻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그동안 경기가 나쁘고 대기업이 줄줄이 쓰러져도 물가가 안정돼 위안을
삼았는데 최근 환율급등으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이 이마저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금융시스템의 안정이 위협받는 지금 상황에서 물가불안까지 겹친다면
구조조정이 훨씬 더 어려워지는 만큼 정책당국은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물가안정대책을 세운다고 하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좋을
것인지 모를 정도로 경제사정이 꼬이고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행정규제를 앞세워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인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이런 때일수록 냉정한 원인분석과 적절한 대응, 그리고 지도층의
솔선수범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먼저 물가상승의 원인을 환율상승의 탓으로만 돌리고 불가피한
현상으로 체념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경제이론에서는 발생원인에 따라 인플레이션의 유형을 수요견인(demand-
pull)형과 원가압박(cost-push)형으로 나눈다.

하지만 현실경제에서는 어느 한쪽이 먼저 발생해도 다른 한쪽도 뒤따라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 경우도 우선은 환율상승으로 인한 원가압박이 문제지만 수요측면에서
의 불안요인도 적지 않다.

한 예로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한은특융 2조원 및 부실채권정리기금 2조원이
풀리는데다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부동자금이 대기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들은 원자재값 상승을 최대한 자체적으로 흡수하기 위해
생산성향상 및 원가절감에 노력해야 하며, 통화당국은 통화공급조절을
포함한 총수요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원가상승분을 흡수하기 위해서 임금 금리 땅값 등 비용상승을 최대한
억제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물가동결 조치라도 발동해야 한다.

특히 강조할 것은 무작정 돈을 많이 푼다고 금리가 내리고 부도가 안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내년 장기채시장의 개방을 계기로 자산담보부 채권발행을 허용하는 등
채권시장을 적극적으로 육성해 우리기업들의 지나치게 높은 단기부체비중을
낮춰야 한다.

그래야 금리부담도 경감되고 금리수준도 하향안정될 수 있다.

또 한가지는 합리적인 소비 및 투자형태가 요구된다는 점이다.

한 예로 환율상승으로 휘발유값이 리터당 20원 가량이나 오르지만 원유
수입이 올해 수입액의 1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번 기회에
기름소비를 줄여야 하겠다.

그리고 불합리한 유통구조와 지나치게 높은 유통마진, 불합리한 행정규제
등과 같은 만성적인 문제들도 하루빨리 시정돼야 한다.

이밖에 우리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인 지나치게 부동산비중이 높은 투자
행태가 우리의 자본생산성이 경쟁국에 비해 낮은 원인이라는 점도 지적돼야
한다.

우리기업들은 시장이 개방된 상황에서 값싸고 품질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