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기관들에 또다시 극심한 외화자금난이 불어 닥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그동안 외화자금을 지원해온 산업 기업 수출입 등 국책은행들이 신용등급
하락여파로 단기자금 조달수단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3일 금융계에 따르면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S&P)와 무디스가 잇달아 한국의
신용등급을 한단계씩 낮춤에 따라 국책은행들의 해외 CP(기업어음) 발행이
사실상 중단됐다.

이는 국제금융시장의 CP 투자관행에서 비롯된 것으로 미국 CP시장에서는
발행기관의 단기 신용도가 무디스 등급 P1이상인 "티어(TIER)1"에 주로
투자되며 P2등급이하인 "티어2"에는 투자규모가 극히 미미한 수준에 불과
하다.

따라서 한국의 국가신용도가 그대로 적용되는 국책은행들의 경우 단기
등급이 P2로 바뀜으로써 CP를 발행해 봐야 투자자가 나서질 않아 팔리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 지난달 29일 산업은행은 만기가 돌아온 1억5천만달러 CP중 2천만달러만
차환 발행(새로 CP를 발행해 만기분을 갚는 것)에 성공했고 나머지는 보유
외화로 갚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수출입은행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만기분에 대한 차환발행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국책은행들이 발행한 해외CP는 향후 국내 외화자금을 빨아들이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국내의 외화자금난을 촉발시킬 것으로 금융계는 우려
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하루짜리 오버나잇 자금은 고금리에 이용기간도 제한돼
있고 은행간 자금차입선인 머니 마켓에서도 대부분 라인이 끊겨 CP가
대표적인 자금조달 수단이었다"며 "이제 CP 발행마저 불가능해져 외화
구하기가 앞으로는 더욱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특히 CP는 만기가 3개월이내여서 당분간 이같은 상황이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연말께 미국 유럽계 금융기관들이 결산에 대비해 자금을 회수할 경우
최악의 외화자금난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국책은행들의 해외CP 발행잔액은 산업은행 약 17억달러(미국CP 13억
달러 가량), 기업은행 9억2천만달러(" 6억달러), 수출입은행 12억3천만달러
(" 9억4천만달러) 등 28억5천만달러에 달한다.

국책은행들은 CP 발행 중단으로 자신들마저 외화자금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것으로 예상되자 시중은행.종금 등 금융권에 지원해준 자금을 회수하는
것은 물론 수출환어음및 유전스매입 등 수출입업무도 감축하는 방안을 고려
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국제평가기관이 등급을 내리면 단기차입 수단이 없어진다며
적절한 대응책을 요구했었다"며 "그러나 당국은 금리가 떨어질 만큼 떨어진
상황에서 신용등급을 유지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묵살했다"고 전했다.

< 박기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