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법원이 지난 68년 불법으로 규정한 판례를 뒤집고 상품이나
서비스의 공급업자가 소매점에 대해 소비자가격의 최고한도를 지정하는
소위 재판매가격지정을 합법이라고 유권해석한 것은 공정거래정책의
중대한 변화를 뜻하는 것이어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제도는 미국과 일본의 내용이 많이 반영돼
있어 그에 따른 파장을 면밀히 분석하고 정책방향을 재정립해야 할것 같다.

미 경쟁정책의 변화 방향은 이번 대법원의 유권해석을 내린 이유와 배경을
따져보면 쉽게 가늠해 볼수 있다.

합법이라고 해석한 이유는 재판매가격,즉 최고가격지정이 소매업체가
인위적으로 값을 인상하는 것을 제한함으로써 결국 소비자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재판매가격 지정행위의 경쟁제한적인 요소보다 최고가지정에
따른 소비자이익이 더 우선적인 합법성의 근거가 됐다고 볼수 있다.

또 독금법 운용에 있어 재판매가격지정 등을 당연 위법사항으로 분류해
금지해오던 경직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합리의 원칙을 적용, 유연성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바뀐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얻을수 있는 시사점은 여러가지라고 생각된다.

우선 재판매가격 지정행위를 미국과 같이 합법으로 인정할 것이냐가
가장 직접적인 문제로 제기될 것이다.

우리도 공정거래법 29조에서 재판매가격 유지행위를 위법으로 정해놓고
있다.

즉 생산자가 재판매하는 사업자에게 거래단계별 가격을 미리 정해
그 가격대로 판매할 것을 강제하거나 이를 위해 구속조건을 붙여 거래하는
행위는 금지시키고 있다.

따라서 형식적으로 재판매가격지정을 합법으로 유권해석한 이번 미국의
판례를 따른다면 우리도 합법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재판매가격의 지정내용을 보면 우리와 미국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미국은 최고가격을 정해 그 이상의 가격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인
반면 우리의 재판매가격유지 행위는 대부분 최저가격을 제시하고 그 이하로
받을 경우 제조업자가 물품공급중단 등의 제한을 가하는 형식이다.

다시 말해 미국의 경우 소비자 이익이 보호되는 반면 우리는 제조업자
등 공급자의 이익보호를 위해 재판매가격지정이 이뤄지는 셈이다.

이렇게 보면 미 대법원의 유권해석을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하기는 어렵다.

또 최고가격지정이 소비자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유통업자들간의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임에는 틀림없어 가뜩이나 시장경쟁의 제약이 많은
우리 현실에서 바람직한 것인가도 좀더 신중히 따져볼 일이다.

어쨌든 미국의 공정거래제도를 많이 참고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번
미 대법원의 유권해석 등 국제적인 정책의 추세변화를 보다 능동적으로
수용할 태세를 갖추는 것은 미뤄야할 일이 아니다.

특히 법적용에 합리의 원칙을 중시하는 자세는 가급적 빨리 수용하고
아울러 이번 일을 계기로 경제력집중완화등 규제중심으로 돼있는 우리의
공정거래법체계를 경쟁촉진이라는 본래 목표에 충실할수 있도록 근본적인
개편작업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