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만남의 연속이라고 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살다보면 좋든 싫든 각양각색의 모임에 끼여들게 마련이다.

단지 만나 웃고 즐기는 친목모임도 있을테고 어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모임도 있을 것이다.

뒤끝이 뿌듯한 모임이 있는 반면 모였다 헤어지고 나서는 뭔가 허망하고
찜찜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필자에게도 즐겁고 어서 돌아왔으면 하는 모임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언제나 뿌듯한 모임, 수필문우회를 이야기하고 싶다.

정식 문단에 등단한 작가들의 모임으로 회장은 서울대 철학교수를
역임하고 학술원 회원이신 김태길 박사, 부회장은 고대 중문학과 허세욱
교수가 맡고 있으며 작가외에 현직 대학교수 의사 공무원 금융인 등
직업도 다양하다.

매월 셋째주 토요일 오후에 정기적으로 모여 미리 선정한 작품 (수필)을
품평하고 저녁겸해서 간단한 회식으로 이어진다.

작품 품평회에서는 너무도 진지한 나머지 언성을 높이는 경우도 있는데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지 않을뿐 아니라 오히려 회식 자리에서 유머 섞인
담론거리가 된다.

문인모임이 다 그렇듯 늘 화기애애하다.

"계간 수필"이란 동인지도 내고 있다.

금융인은 필자뿐이며 모두 문단의 대선배들이고 나이로도 필자가 가장
밑이다.

때문에 필자는 늘 배우는 입장에 있다.

문학은 물론이고 인생을 배우고 있다.

하나같이 훌륭한 인생의 대 선배들임을 모임때마다 거듭 느낀다.

대만 수필가들의 초청으로 대만에 갔을 때의 일이다.

일정을 끝마무리하는 마지막 회식때 황필호 (전 동국대 교수.철학)
회원은 필자에게 "이제 우리 마음껏 취해봅시다.

이형, 워낙 원로분들이라 그동안 기를 못 폈지요.

나도 밖으로 나가면 원로야.제자들이 선생님하고 떠받들어. 그런데
여기선 명함도 못내니 참, 하하하"하며 우정이 넘치게 소흥주를 권하는
것이었다.

우리 모임을 한마디로 요약한 유머다.

필자는 빠듯한 업무로 자칫 메마르기 쉬운 안뜰을 수필문우회를 통해서
적시며 살찌우고 있음을 늘 행복하게 생각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