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원기를 회복하는 듯했던 주식시장이 또다시 공포감에 휩싸이고 있다.

간신히 바닥을 확인한 것 같았던 종합주가지수가 사상최대치로 곤두박질치고
환율과 금리마저 급등하자 "동남아의 금융위기가 마침내 우리나라에도 상륙
한게 아니냐"는 위기감에 투자자들은 전율하고 있다.

500선이 깨졌던 대폭락사태가 또다시 재현되는게 아니냐는 절망감속에 경기
관련주와 개별종목 구분없이 투매물량이 쏟아졌다.

<>.단기급등했던 종합주가지수가 폭락세로 돌변하자 각 증권사 영업사원들과
투자자들은 허탈하다 못해 완전히 공포감에 질린 표정.

깡통계좌의 위기에서 간신히 벗어나는가 싶었는데 오히려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게 아니냐는 절박감에 휩싸여들고 있다.

일은증권의 한 영업직원은 "고객예탁금이 늘어나면서 투자심리가 많이
좋아졌는데 이날 주가 폭락으로 모든게 망가졌다"며 "종합주가지수 500선이
8일 무너질 경우 새로 유입됐던 고객예탁금마저 빠져나가 주식시장이 정말로
붕괴될지도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객장에 나온 투자가는 "매수우위를 지키겠다던 기관들이 오히려 주식을
팔고 있다"고 분개하면서 "재경원에 항의했더니 "당신들도 함께 매도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더라"며 정부당국의 무성의함을 신랄하게 성토했다.

광주에 사는 투자자는 "정부와 기관을 더이상 믿을 수가 없다.

일반투자자 만이라도 매도자제를 결의해 증시를 안정시키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신문사로 호소하는 전화늘 걸기도 했다.

증시관계자들은 이날 주가 폭락이 단지 지수하락폭 뿐만아니라 심리적인
파괴력에서도 어느 때보다 충격이 클 것으로 우려, 정부와 연기금 등 기관의
대책마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날 외국인들의 매도공세는 무엇보다 원.달러환율 상승과 아시아증시의
동반폭락에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홍콩 영국 미국계 구분없이 팔자에 나섰으며 한전 삼성전자 포철 LG화학
LG건설 LG반도체 등 지수관련주및 경기관련주가 주요 매도타깃이었다.

매도가격을 불문하고 하한가에라도 팔자는 주문이 쏟아졌으며 원화환율
상승에 대해서는 외국인들이 거의 히스테리컬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 외국증권사 영업부관계자는 전했다.

<>.국내은행과 종금사들의 국제신용등급이 떨어지는 등 금융시장이 불안하고
해외에서 국내 외환시장을 보는 눈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어 외국인들의
매도공세는 앞으로 더 거세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

좋은 예로 이날 오전장중 외국증권사를 중심으로 미국의 환투기세력이 이미
원화가 거래되는 역외선물환시장(NDF)에 대거 가담했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한 외국증권사 관계자는 "며칠새 외국인들의 매도규모가 주춤했던 것은
대규모로 팔고 나갈 적절한 시점을 기다리며 잠시 관망세(hold)를 보였기
때문이었다"며 "그 시점이 온 것 같다"고 밝혔다.

전날 하루만 하더라도 미국계 뮤추얼펀드가 한전 30억원어치를 매수했으나
이날은 이마저도 뚝끊어졌다고 덧붙였다.

<>.현물시장 폭락과 함께 선물 12월물마저 하한가로 돌입하자 매수세가
실종, 선물시장은 후장들어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개점휴업상태가 되고
말았다.

선물시장은 이날 오전까지만해도 1만3천계약이상 거래되는 활발한 매매공방
이 펼쳐졌다.

그러나 11시17분경 하한가로 돌입하자 매매중단조치(서킷브레이커)가 발동
됐고 10분뒤 매매재개됐지만 매수세가 뚝 끊겼다.

후장들어서 간혹 1~2계약씩의 매수호가가 들어오면 곧바로 거래된채 소강
상태를 지속, 선물 매매시스템이 다운되지 않았냐는 우스개소리가 나올 정도
였다.

그동안 현 지수대를 바닥국면으로 인식한 일반인과 종금 등이 꾸준히 매수를
늘렸으나 이날은 대부분의 기관마저 매도로 돌아섰다.

<>.순매수 유지를 자율결의한 기관들은 주가 폭락사태에 팔지도 못하고
살수도 없어 전전긍긍하는 모습.

그동안 꾸준히 순매수를 지킨 투신사 관계자는 "이제 일반인들조차 매도로
돌아섰는데 기관이 무한정 매도물량을 받기도 불가능해 순매수를 유지할수
있을지 자신하기 어렵다"며 고개를 저었다.

증권사 관계자도 "사고 싶지 않지만 팔수도 없어 그저 관망하고만 있을뿐"
이라고 탄식했다.

증권업계는 외국인의 매도공세가 다시 강화되고 있는 마당에 순매수를
유지하면 외국인들에게 팔 기회만을 제공하는게 아니냐며 기관 순매수 유지에
회의적인 반응.

게다가 선물시장이 저평가돼 있어 매도차익거래(현물매도 선물매수)를 통해
무위험수익을 얻을수 있는데도 기관 순매수 유지 때문에 눈에 보이는
이익마저 얻지 못한다고 불평하기도.

< 현승윤.정태웅.김홍열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