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어디까지나 김치수의 욕심이다.

끝없는 영신에 대한 편애다.

아버지의 야심을 꿰뚫은 영신은 난처한 입장이 된다.

적어도 지영웅이 프로를 따기 전에는 절대로 그에게 어떤 자극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는 지금 안나푸르나의 영봉을 향해 치닫고 있지 않은가? 그녀는
아버지와 협상을 하기 위해서 백명우와 아버지앞에서 훌륭한 연극배우가
된다.

"동경에 동행을 하고 싶으시다면 갈 수도 있어요.

또 저는 아버지 말을 잘 듣는 딸이어서 언제나 하자는 대로 해요"
하고 함빡 웃어보인다.

만약 아버지가 지금 지영웅을 건드리기 시작하면 그 외로운 왕자는
영원히 멸망할 수도 있다.

아버지는 마음만 먹으면 지영웅 쯤 얼마든지 발가벗겨서 영신 앞에
망신을 주고, 아니 그보다 더 잔인한 짓도 할 수 있는 차가운 인물이기
때문에 영신은 결코 그의 기분을 거스를 일은 안 하려고 한다.

그것이 사랑하는 지영웅을 위하는 일이고, 그가 골프계의 왕으로 살 수
있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영신은 지금 모든 것을 초월해서 지영웅을 인간적으로 사랑하고 있다.

그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거짓말도 할 수 있다.

아니 어떤 악역도 할 수 있다.

아버지는 지영웅에 대해서,또 자기 딸의 마음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는 지독하게 못 마땅했지만 내색은 않고 다른 참한 신랑감을 고르고
고른 결과 백명우를 점찍었던 것이다.

물론 백명우도 영신이 두번이나 결혼한 전력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해외파라 그런 것에는 별로 신경을 안 쓴다.

인간 됨됨이가 문제라고만 믿는다.

"동경에 와주신다면 정말 영광이겠습니다.

김치수 회장님과 미스 김이 옆에 있으면 아주 마음이 든든하고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는 유창한 불어와 영어로 영신과 가슴이 탁 트이는 대화를 한다.

영신은 잠자리에서만 행복한 지영웅보다 이렇게 정서적으로 대화가 되는
백명우에게 신선한 매력을 느낀다.

결혼생활이란 역시 정서적으로 서로 통하는 데가 있어야 완전하다.

지영웅과는 절름발이 결혼생활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역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결혼을 해서
같은 레벨의 사람과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영신은 포도주를 몇잔이나 연거푸 마신다.

그리고 알딸딸한 속에서 순하고 연한 김치수의 딸이 되어 그들의 무드에
동조하기로 한다.

그러나 버림을 받고 짐승처럼 울부짖을 지영웅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그러나 그녀는 운명적으로 김치수 회장의 오직 하나인 착한 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