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을 전후해 TV와 인터넷, 일간지 등에 한 미술관 개관소식이
일제히 보도됐다.

다름아닌 스페인 북부도시 빌바오에 설립된 구겐하임 미술관 개관
소식이었다.

이미 지난 59년 뉴욕 맨해튼에 라이트에 의해 설계된 나선형 구조의
미술관으로 세계인들의 눈길을 모았던 유명재단의 미술관이기는 하지만
전세계 언론이 한 미술관 개관을 이렇게 대대적으로 보도한 적은 전례가
없던 일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많은 미술관이나 미술문화재단이 있지만 "솔로몬
구겐하임 재단"만큼 탁월한 미술경영의 전략적 수완을 발휘하는 곳도
드물다.

방대한 컬렉션, 세기적 건축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독특한 건축양식 등 문화관광면에서 탁월한 경영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솔로몬 구겐하임이 잘 다져놓은 하드웨어 및 체계적인 경영전략과 그의
질녀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결합되어 통합적으로
운영되는 이 재단은 그 구성 자체도 화젯거리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재단의 시야와 능력은 세계를 무대로 하는 것이며,
기상천외의 아이디어들이 미술관 경영의 교과서로 자리잡을 만한 것이다.

뉴욕의 미술관만 하더라도 나선형구조의 미술관 건축은 상식을 깨는
것으로 이미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조형작품이었다.

아른하임의 게슈탈트 심리학을 비롯한 많은 조형관계 텍스트에 등장하기도
하는 이 미술관은 자체가 작품이자 아트센터로 기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관광거점으로 자리잡음으로써 인근의 관광산업에 기여하는 바가
지대하다.

이밖에도 이 재단에서는 모차르트 고향인 잘츠부르크의 바위산에 암반
동굴 미술관설립을 추진하는 등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한 것 같다.

최근 개관한 빌바오 구겐하임도 입지면에서 모험적이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으로 바스크 분리주의자의 테러 위협과 긴장이 끊이지 않는
문화적 오지인 이 철광도시에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문화적으로 삭막하고 낙후된 이 지역에 미술관을 설립하는 이 재단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추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다소 불안요인은 있지만 이미 문화적으로 목말라 있는 시 당국과
시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와 협력을 받고 있는 상태이며 시드시 오페라
하우스에 필적할 만한 기념비적 건축이다.

컬렉션 내용이 미국 현대미술 중심으로 되어 있다는 지적도 있기는 하나
구겐하임의 능력에 비춰볼때 그렇게 비관적인 것 같지는 않다.

재단측이 가장 힘을 쏟는 것이 바로 마드리드 국립 소피아미술관에
소장된 그 유명한 피카소의 "게르니카"이다.

바스크 민족의 아픈 역사를 다룬 이 세기적인 작품의 양도 요구는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명분과 설득력을 갖는다.

물론 마드리드측이 보존상의 문제 등을 핑계로 내세우고 있어 쉽지는
않다.

설사 앞으로 그 작품의 인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구겐하임
입장에서는 손해볼 일이 없어 보인다.

이미 명분을 축적하고 있으며 그 작품의 기득권을 전세계 언론에
공표하여 그것 또한 돈 안드는 엄청난 홍보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 선화랑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1일자).